[취재후 Talk] 김건희, 팬덤이 문제다

김정우 기자 | 2022.06.14 18:43

김건희 여사가 처음 언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2019년 7월 청와대에서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의 임명장 수여식이었다. 검은색 정장과 이른바 '애교머리'로 가꾼 김 여사의 외모와 옷차림에 상당한 이목이 쏠렸다.

김 여사가 그날 입은 옷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명품이었다. 하지만 브랜드나 모델, 가격 그 어느 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 스쳐지나가는 사진만 나와도 명품을 잡아내던 전문가들마저 그날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2년여 후,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남편 덕분에 김 여사에게 또 한 번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각종 의혹과 소송으로 2년 가까이 은둔할 수밖에 없었던 김 여사가 지난해 12월 사과 기자회견을 위해 다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검은색 바지 정장 차림이었다.

그날 입은 옷도 굳이 따지자면 명품 계열이었지만, 아무도 이를 포착하지 못했고 문제 삼지도 않았다. 옷 자체가 별 특색이 없는데다 이미 유행이 상당히 지난 '오래된 명품 옷'이었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5만원 마케팅'과 '내돈내산' 명품

김 여사는 대한민국 최초의 '사업가 출신 퍼스트레이디'다. 현금 몇 푼 없던 남편과 극명히 대조되는 아내의 재력은 이미 여러 차례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과정을 거치면서 널리 알려진 상태다. 수십년 검사 경력의 남편보다 '훨씬 잘 벌던' 대통령의 배우자의 존재 자체가 여전히 많은 국민에게 어색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5만원 마케팅'이 시작됐다. 김 여사의 팬클럽인지, 지지자들인지 모를 사람들이 평소 소박하게 입는 옷의 브랜드와 가격을 열심히 홍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당선인 배우자 시절이던 4~5월 관련 보도가 집중됐는데, 당시 청와대를 떠날 준비를 하던 김정숙 여사의 옷차림과 비교하는 분석이 쏟아졌고, 구(舊) 권력에 대한 공세로 이어졌다.

김 여사 측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평소 입던대로' 옷을 입었을 뿐이다. 격식을 갖춰야 할 자리엔 자신의 옷장에서 좋은 옷을 꺼내 입었고, 부담없는 자리에선 3만원, 5만원, 10만원짜리 옷과 신발을 별 생각없이 입고 신었다. 다만 김 여사의 옷장에 있는 명품 옷들이 대부분 10년째 되어가는 '구(舊)상품'이라, 전문가들도 한번에 모델명을 쉽게 특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를 5공·6공 시절 관점으로 회귀해 '검소한 영부인'으로 호도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이들은 김 여사의 '5만원짜리 안경'까지 내세워 열광하며 팬덤 마케팅을 이어갔는데, 마침 테이블에 놓인 노란색 두루마리 휴지가 7만원이냐 1만6000원이냐는 논란으로 확전되는 바람에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홍보 관점에서 보면 '본전도 못 뽑은' 선전이었던 셈이다.

결국 김 여사는 지난달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열린음악회'를 관람하면서 노란색 체크무늬가 선명한 디올(Dior) 제품을 입었다. 카메라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될 것을 알면서도 '대놓고' 프랑스 명품을 입은 건데, 주변의 '5만원 마케팅'에 김 여사 스스로 반박한 모양새가 됐다. 이어 28일 사전투표 땐 허리춤에 디올 상징인 꿀벌 자수가 새겨진 흰 블라우스를 입었고, 다음날 주말을 맞아 용산 대통령실 잔디밭에선 신발끈에 로고까지 찍힌 디올 운동화를 신었다.

음식평론가인지 시사평론가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한 인사는 "김건희의 옷이 디올의 미발매품임이 확인됐다"면서 '협찬 의혹'을 제기했고, 야권 성향의 유명 방송인은 "국내에서 구매할 수 없는 제품"이란 주장을 이어가며 논란을 키웠다.

하지만 해당 의상들은 대부분 김 여사가 최근 자신의 돈으로 국내 매장에서 산 '내돈내산' 명품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 배우자의 '공정과 상식'

'정치인 윤석열'을 대선으로 불러낸 '공정과 상식'이란 가치는 그 대척점에 '가식과 위선'이란 구악(舊惡)이 있기에 더욱 도드라졌다. 충분한 재력에도 해진 구두 밑창을 그대로 두거나, 강남 아파트를 소유한 채 낡은 가죽 가방을 갖고 다니는 행동은 저마다의 개성이자 자유다. 하지만 이를 '서민 코스프레'로 활용하는 순간 대중은 그 위선에 곧바로 경고장을 보낸다. '사치'는 자유지만, '위선'은 일종의 사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 이재명'만큼 여야 양쪽 진영이 사활을 걸었던 대결이 '김건희 대 김혜경'이었다. 이는 각 후보의 강점을 배우자 이슈로 약화시킨다는 전략과 맞물려 여야가 서로 고강도 검증과 의혹 제기에 집중하며 전력을 쏟아부었다.

당시 김건희 여사에 대한 비호감 여론을 반전시킨 결정적 계기는 5만원짜리를 입은 상대적 검소함도, 유기동물을 데려다 키운 미담도, 팬클럽의 조직적인 지지도 아니었다. 한 유튜브 채널이 무모하게 공개한 7시간 녹취록의 진솔하고 털털한 모습이 중도·청년층 표심의 변화를 불러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선 최대 변수'로 꼽혔던 그는 이제 '대통령 부인'이란 공적 직위를 갖게 됐고, 공개 발언 한 마디 없이 대통령 못지 않은 여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국민이 기대하는 대통령의 기준점이 '가식과 위선'에 저항하는 '공정과 상식'에 있는 만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배우자도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여사의 집무실 방문 사진이 공식 라인이 아닌 팬클럽을 통해 전파되고, 각종 논란에 대한 대응도 대통령실이 아닌 팬클럽이나 지지자들이 앞장서 항변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언쟁이 벌어지자 팬클럽 회장이 SNS를 통해 욕설까지 쓰는 일이 벌어졌다.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담긴 기획와 전략은 사라졌고, '팬덤 수준'의 아마추어식 대응만 난무하는 현실이다.

사업가 출신인 김 여사나 주변 인물들 입장에선 호의를 갖고 지지해준 세력에 고마움을 표하고 대우를 해주는 게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기브 앤 테이크'만큼 공정한 논리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활개치는 팬덤, 방관하는 대통령실

선거는 끝났고, 대통령은 고도의 정무적 판단으로 통치 행위를 하며 한 세력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래서 한 개인이 아닌 공직자들이 일정과 메시지, 공보, 법률대응, 리스크 관리 등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국정 수행 방향을 설정한다.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법적 책임과 권한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지만, 국가수반의 배우자로서 의전과 예우를 받는 받는 만큼 국민 통합과 약자에 대한 배려 등 공적 역할이 부여돼왔다.

특히 대통령에 못지 않은 주목을 받는 배우자의 경우 더더욱 정무적 계획 수립과 상황 관리, 홍보 전략 등이 필요하지만, 대통령실에선 이를 총괄해서 주도하는 인사나 조직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손을 놓은 채 대응에만 급급한 처지다.

대통령이든 배우자든 국가를 대표해야 할 리더십이 팬덤에 매몰될 경우 국정 가치가 얼마나 훼손되고 나라가 어떻게 둘로 쪼개지는지, 국민 대다수는 이미 충분히 체득한 상태다. 극단적 진영 논리와 이를 지지하는 팬덤으로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는 권력 독주는 반드시 반대 세력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

제2부속실을 폐지했다고 남편보다 활동 반경이 넓었던 대통령 배우자를 향해 '조용히 내조만 하라'고 압박하는 것도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행태다. 이른바 '주부'나 '사회운동가'가 아닌 최초의 사업가 출신 퍼스트레이디가 등장한 만큼, 그에 적합한 역할과 지원 방식이 다시 설정돼야 한다.

김건희 여사는 강점과 리스크가 극명하게 대립되는 인물이다. 그만큼 호불호 사이의 간격이 넓을 수밖에 없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갈등이 내포된 상태다. 전직 대통령의 배우자를 예방하는 지극히 당연한 행보에도 온갖 음해성 의혹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대통령실이 계속 방관한다면, 결국 가장 큰 부담은 대통령 부부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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