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9

[윤정호 앵커칼럼] 폐허 속 만찬

등록 2017.06.20 20:26

지금 나오는 노래, ‘언제나 어디서나(Anytime anywhere)’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르고 있는데,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에 가사를 붙였습니다. 전쟁의 폐허에 울려 퍼졌던 ‘아다지오’의 감동을 되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1992년 보스니아내전 때였습니다. 세르비아 민병대가 사라예보 중앙광장에 포탄을 퍼붓습니다. 빵을 사려고 줄 서 있던 22명이 숨집니다. 그런데 이튿날, 연미복을 입은 남자가 첼로를 들고 광장에 나타납니다. 사라예보 필하모닉의 수석 첼리스트, 스마일로비치였습니다. 그는 무너진 국립도서관 돌 더미에 앉아 ‘아다지오’를 연주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프다는 곡입니다. 그러자, 세르비아 민병대는 저격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총을 쏘지 못합니다. 그는 희생자 22명을 애도하는 22일간의 연주를 무사히 마칩니다. 그 사이 포격도 총격전도 멈춥니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세계의 눈과 귀를 모았습니다. 음악가, 가수, 학자들이 사라예보를 찾아오면서 국제사회가 내전 해결에 나서는 계기가 됩니다. 

엊그제 시리아 반군지역 마을사람들이 만찬을 벌였습니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 거리에 식탁을 차렸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이 순간만은 전쟁의 참극을 잊은 듯 평화롭습니다. 만찬 사진을 보며 ‘사라예보의 첼리스트’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극한상황에서 음악은 영혼을 위로해준다”고 했습니다. 밥도 마찬가지입니다. 먹는다는 것 자체가 거룩한 일입니다. 혀뿐만 아니라 삶과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기 때문일 겁니다. 또 감사하는 마음이 지친 몸을 따스하게 감싸줍니다.

시리아 거리의 만찬은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처럼 가장 슬픈 밥일 겁니다. 하지만 그 식탁엔 희망이 피어납니다. 전쟁에 눈먼 자들에게 이제 그만, 피 묻은 손을 거두라고 말합니다. 세계 난민의 날에 전해드린 앵커칼럼, ‘폐허 속 만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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