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메리 크리스마스

등록 2017.12.25 21:52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시인 김종삼이 1950년대 크리스마스 무렵에 쓴 시 '북치는 소년'은 미학적 순수시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뒤 미국 사람들이 우리 전쟁고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탄절이면 카드를 보냈던 모양인데, 정작 많은 사람들은 이런 게 있는 것 조차 몰랐습니다. 하루 하루 먹고 살기조차 고단했던 시절이니 그럴 법도 했겠지요? 어떤 미국인은 카드에 이런 글을 적어 보냈습니다.

"선물을 보내고 싶지만, 네 손에 들어갈 것 같지 않아서, 대신 비싼 카드를 사 보낸다."

고아에게 가는 성탄 선물마저 누군가 가로챈다는 얘길 들었던 모양입니다. 바다 건너 온 그 화려한 크리스마스 카드가 춥고 배고픈 전쟁 고아의 눈에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을까요? 불과 60여년 전 우리에겐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시절이 있었다는 것 조차 상상하기 힘든 풍요로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오늘 크리스마스는 그 때보다 얼마나 더 따뜻해 졌을까요? 

어제 겨울비 속에 제천 화재 희생자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하늘에 유족들의 흐느낌이 울려 퍼졌습니다. 아내를 잃은 한 남편에게 오늘 유품이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교회에서 불우이웃에게 줄 반찬을 만들고 땀을 씻으러 목욕탕엘 갔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유품엔 떡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주려던 백설기 두 덩어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거기 담긴 가족 사랑의 가늠할 수 없는 깊이가 이번 크리스마스엔 더 더욱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오늘 성탄 저녁, 모두들 가족과 따스하게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슬픔을 나누고 기쁨은 더하는 크리스마스 밤에 사랑과 연민, 은혜와 겸양을 생각합니다. 12월 25일 앵커의 시선 '메리 크리스마스'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