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소방관의 기도

등록 2017.12.27 21:46

수정 2017.12.27 21:50

소방관이 소화전 앞에 불법 주차한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뚫린 차창을 통해 호스를 연결합니다. 형제 소방관의 헌신과 용기를 그린 영화 '분노의 역류'의 한 장면입니다.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3년 전, 보스턴 소화전 앞에 서 있던 신형 BMW 사진입니다. 차 주인이 배상을 받기는커녕 주차위반 딱지와 백 달러의 벌금 고지서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선 이런 일이 심심찮게 벌어집니다. 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소방관 출동과 진화를 방해하는 차를 밀어붙이고 부숴도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출동하다 사고가 나면 소방관이 개인 돈으로 물어주기 일쑤입니다. 접촉사고가 나서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불을 끄느라 문과 가구를 부쉈다가 소송에 시달립니다.

그제 성탄절에 수원 공사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소방차가 아닌 개인 승용차에서 소방복을 꺼내 갈아입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쉬는 날인데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소방관들입니다.

한 소방관은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가다 차를 돌렸다고 합니다. 한 해 평균 열 명이 넘는 소방관이 순직하고 300명 넘게 다칩니다. 선진국에 비해 인력이 크게 적고 처우도 박합니다.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온갖 비난이 쏟아집니다. 불가항력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까지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번 제천 화재에서도 소방당국의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따질 건 따져야지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소방관들의 소명 의식과 희생까지 깎아내려선 안 될 겁니다.

지난 2001년 서울 홍제동 화재로 순직했던 여섯 소방관 중에 한 분의 책상에 이런 기도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12월 27일, 앵커의 시선 '소방관의 기도'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