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추위의 추억

등록 2018.01.12 21:45

수정 2018.01.12 21:56

동네 구멍가게에 진열해둔 소주병들이 모두 얼어터진 적이 있습니다. 1981년 양평에 영하 32.6도 추위가 몰아닥쳤을 때 일입니다. 기상관측 사상 최저 기온입니다. 최강 한파가 닥쳤다는 오늘, 횡성 최저기온이 영하 25도, 서울은 영하 15도였습니다.

2012년 봉화의 영하 28도, 재작년 서울의 영하 18도하고만 비교해도 사실 최강 추위는 아닙니다. 지금 중년이 넘은 분들은 어릴 적 유난히 매서웠던 추위를 기억하실 겁니다. 문고리를 쥐면 손가락이 쩍쩍 달라붙었지요. 자다가 마시려고 머리맡에 둔 자리끼가 꽁꽁 얼어붙는 건 다반사였고요.

그때보다 먹고 입고 자는 게 훨씬 나아진 세상입니다. 온난화로 추위도 한결 누그러졌고요. 그런데도 다들 두터운 옷 뒤집어쓰고 종종걸음을 칩니다. 혹시 우리 마음이 추워진 건 아닐까요. 지난달 강화도에 천상병 시인 동상이 섰습니다. 나루터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하는 명시 '귀천'을 썼던 걸 기립니다.

막걸리가 밥이고 하나님 은총이라고 했던 천상병답게 동상은 막걸리 잔을 들고 있습니다. 그 잔에 누군가 매일 막걸리를 부어둔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추운 날엔 얼어 있어서 애써 치워놓으면 이튿날 또 어김없이 채워져 있답니다. 

사람들은 더우면 금세 옷을 벗어버리고, 조금만 추워도 갖은 옷을 꺼내 입습니다. 금세 뜨거워졌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세상 인심처럼요. 천상병 시인이 떠난 지 벌써 25년입니다 . 이 추위 속에 아직 찾아와 술을 권하는 사람은 누굴까요? 그의 한결같은 따뜻한 마음이, 더위에 끓고 추위에 얼어붙는, 변덕스러운 세태를 돌아보게 합니다.

1월 12일 앵커의 시선 '추위의 추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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