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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대한민국의 재난 망각증

등록 2018.01.26 21:52

닭장에 사는 닭이 날마다 주인이 주는 모이를 받아먹습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니까, 평생 그렇게 살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결국 주인에게 잡혀 식탁에 오르고 맙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닭에 빗대 말했던 논리학의 허점입니다. '러셀의 닭'은 사고와 재난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상을 말할 때도 곧잘 인용됩니다.

작년에도, 한 달 전에도, 어제도 괜찮았으니까 오늘도 별일 없겠지 하다 또 사고가 터진다는 겁니다. 저는 거기에 보태 닭장 속 다른 닭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주인에게 붙잡혀 가는 닭을 보고 깜짝 놀랐다가, 자기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금세 잊어 버리는 겁니다. 제천 화재 참사를 보며 우리 모두가 안타깝고 부끄러워한 게 불과 한 달 전입니다.

출입구에 방화문이 없었고, 스프링클러는 돌아가지 않았고, 비상구는 막혀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초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정부가 국민의 울타리, 우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더 끔찍한 재난이 밀양 병원에서 터졌습니다.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십중팔구 사람이 초래한 재앙, 인재(人災)라는 말이 또 다시 나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회의하고 점검하고 대책이 나오겠지요. 그 다음은 러셀의 닭처럼 다시 잊어 버리는 건가요. 

2014년 장성 요양병원 화재까지 일곱 개 대형 재난 사고를 추적한 책 ‘재난을 묻다’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참사를 둘러싸고 정의와 단죄, 회복과 화해를 이야기하지만, 무엇보다 기억과 기록이 우선돼야 한다."

1월 26일 앵커의 시선은 '대한민국의 재난 망각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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