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문단의 미 투

등록 2018.02.07 21:57

시인 김종삼에게 누군가 "시가 뭐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시인은 시로 대답했습니다.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그렇듯 시인들은 웬만해선 누군가의 실명을 들어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당 서정주 시인이 작고한 얼마 뒤 그의 제자 였던 시인이 스승 미당에 대해 쓴 글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그는 미당이 세상에 대한 수치심이 없고 권력 편에만 섰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엔 소설가 장정일씨가 원로급 문인들을 거명하며 상스러운 입담꾼, 병든 망상가라고 비판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최영미 시인이 최근 발표한 '괴물'만큼 파문이 큰 시(詩)도 드물듯 합니다. 실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시를 읽어 보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는 원로 시인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고발한 겁니다.

"En 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 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충고를 깜빡 잊고 En 선생 곁에 앉았다가/ 미 투…"

그는 문단에 성폭력이 일상화돼 있고, 자신도 술자리에서 수십 차례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습니다. 문단 유력 인사들의 요구를 거절하면 원고 청탁이 끊겨 작가 생명이 끝난다는 충격적인 폭로도 덧붙였습니다.

문단에서는 재작년에도 성폭력 고발이 이어지다가 최순실 게이트에 묻혀버린 적이 있습니다. 문단 전체가 성폭력 집단으로 매도돼선 안 되겠습니다만, 곪고 곪은 종기가 터진 것인 만큼 이번에는 그 뿌리를 완전히 들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시란 무엇입니까?. 삶에 지친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따뜻한 밥 같은 게 아닐까요? 영혼의 밥 말이지요.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오염된 양식으로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 싶진 않겠지요?

2월 7일 앵커의 시선은 '문단의 미 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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