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올림픽 신인류

등록 2018.02.15 21:52

박태환이 2007년 멜버른에서 처음 세계 정상에 올랐을 때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열여덟 살 허여멀건 소년은 감격의 눈물 같은 건 비치지도 않았습니다. 밝고 자신만만했습니다. 한국 스포츠에 등장한 새로운 인간형, 신인류를 보는 듯했습니다.

김연아는 인터뷰에서 "나는 쿨한 성격"이라고 했습니다. 필요 이상 감정이나 집착에 빠지지 않는 걸 요즘 '쿨하다'고 하지요. 김연아는 "지거나 실수해도 쉽게 잊어버리고, 큰 경기 앞두고 너무 편해 보여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예전 우리 선수들은 승부에 인생을 건 듯 비장했습니다. 져도 울고, 이겨도 울었습니다. 은메달을 따고도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외국 선수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쇼트트랙 김동성은 솔트레이크에서 편파적인 실격패를 당하자 태극기를 내던지고 고무 패드를 걷어찼습니다. 그가 보다 절제된 몸짓을 보였다면 분노와 항의가 더 큰 울림으로 전해졌겠지요.

지금 평창에선 '쿨'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DNA가 만발하고 있습니다. 새 세대들은 최선을 다하되, 져도 당당합니다. 쇼트트랙 서이라는 예선 탈락한 뒤 "아쉽지만 꿀맛처럼 재밌었다고 한다"라고 소감을 남겼습니다. 피겨 민유라는 경기를 하다 윗옷 끈이 풀어졌습니다. 속이 상했을 것 같은데 "개인전 때는 바느질을 잘해서 오겠다"고 소감을 남겼습니다. 쇼트트랙 최민정은 실격 당한 뒤 곧바로 "이겨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생각하면억울할 법도 했겠지만 활짝 웃는 사진까지 올렸습니다. 서이라의 '아주 재밌었다'는 말에 맞장구치며 "가던 길 마저 가자"고 했습니다.

정작 네티즌들은 최민정의 실격으로 동메달을 얻은 캐나다 선수에게 온갖 험악한 댓글을 퍼부었습니다. 평창을 뜨겁게 달구는 우리 젊은이들의 흥겨운 '흥'과 발랄한 '끼'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2월 15일 앵커의 시선은 '올림픽 신인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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