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검찰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텅 빈 피고인석

등록 2018.02.27 21:43

조지훈이 명시 '낙화' 첫머리에 읊었습니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꽃은, 때가 되면 집니다. 낙화의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스러지는 것들은 아름답습니다. 이형기 시인도 '낙화'에서 소멸의 미학을 노래합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집착을 버리고 제때 깨끗이 떠나기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닌 모양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미 재작년에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때를 놓쳤습니다. 언제나 한 걸음 늦게, 그나마 마지못해 주춤주춤 물러섰습니다. 운명을 피하려고 비켜간 길에서 운명과 맞닥뜨렸습니다. 헌법의 명에 따라 파면됐고, 오늘 사법 심리를 끝내는 결심 재판까지 왔습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재판 출석은 법과 역사와 국민 앞에 서는 겁니다. 결심 공판의 최후 진술은 진솔한 육성으로 국민에게 고백하고 참회할 기회입니다.

하지만 그가 서야 할 자리는 오늘도 비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엔 대신 피고인의 마음속 불, 화(火)만 내려앉아 있는 듯 보입니다. 분한 마음을 쌓아두면 화가 된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화가 사람을 다스립니다.

권력이란, 잠시 빌려 입은 옷 같은 것입니다.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에 오를 수 없습니다. 마음을 열어 화를 꺼뜨리면 달래지 못할 불행은 없습니다. 날 선 국민의 눈길도 얼마간은 누그러질지도 모르지요.

법이 죄와 벌을 가리기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제라도 마음을 내려놓고 국민에게 용서 구하기를 기다립니다. 2월 27일 앵커의 시선은 '텅 빈 피고인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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