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정치와 출판기념회

등록 2018.03.12 21:53

수정 2018.03.12 21:57

1955년 전쟁이 휩쓸고 간 명동 '동방싸롱'에서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이 첫 시집 출판기념회를 열었습니다. 여배우 노경희의 시 낭송에 이어, 가수 현인이 달콤한 샹송을 불렀습니다. 조촐했지만 진심 어린 축하와 가슴 따스한 낭만이 넘쳤지요. 요즘 주머니 가벼운 문인들의 출판기념회는 더 소박합니다.

신경숙이 첫 소설집을 들고 와 수줍게 돌렸던 곳도 인사동 카페였지요. 정작 거창하고 요란한 것은 문인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입니다. 한때 편법적인 정치 자금 모금 창구로 개혁 대상 1순위였는데 어느새 슬그머니 부활했습니다. 요즘은 책도 팔고 세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오히려 규모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한 주 예비 후보들의 출판기념회가 쏟아졌습니다. 선거 90일 전, 그러니까 3월 15일부터는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엊그제는 민주당의 한 실세 의원이 지방 선거 출마를 앞두고 북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대학 체육관을 빌렸는데 만 명 넘는 지지자가 모여 들었다고 합니다.

민주당 의원 마흔다섯 명, 민주당 소속 경기 도의원 80%가 참석해 마치 전당대회 같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열흘 전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도 출판 기념회를 열었을 때도 수천 명의 지지자가 몰렸지요.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불륜 스캔들이 터져 나오면서 앞으로의 정치 행로가 불투명해졌습니다.

문전성시(門前成市)라는 말이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 집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 앞이 장터 같다는 얘기입니다. 세상엔 권력의 향방에 후각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정치행사가 돼버린 초대형 출판기념회를 보면서, 떴다 가라앉기를 거듭하는 권력 무상의 이치를 봅니다.

그리고 가난한 문인들의 출판기념회에 샹송이 흐르던 시절을 생각합니다. 3월 12일 앵커의 시선은 ‘정치와 출판기념회’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