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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인천공항의 이별

등록 2018.03.22 21:51

일본에 '나리타의 이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부부가 나리타공항에 내리자마자 이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젊은 층의 이혼 풍조를 꼬집던 이 말의 용도가 2000년대 들어 바뀌었답니다. 장노년층 부부가 막내아이 결혼식 치르고 공항에서 신혼여행 떠나 보낸 뒤 헤어진다는 겁니다. 그 황혼 이혼이 잠깐 주춤한 적이 있었습니다. 연금제도가 변경돼 아내들이 남편 연금의 절반을 떼어 받게 되는 2007년까지 이혼을 미룬 겁니다.

우리도 부부가 갈라서면서 연금을 나누는 사람이 지난해 2만5천명을 넘겨 7년 전보다 여섯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합니다. 어제 나온 통계를 봐도 지난해 전체 이혼은 줄었는데 유독 황혼이혼만 늘었습니다. 30년 넘게 산 부부의 이혼이 1만1600건에 이르러 10년 전의 두 배나 됩니다. 황혼이혼은 대부분 여자 쪽이 원한다는데, 꾹 누르고 살던 응어리가 자식 결혼시킨 뒤 터져 나오거나, 퇴직 남편한테서 받는 스트레스를 못 견뎌서 그러는 거겠지요.

평생 다른 일상을 살던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온종일 얼굴을 맞대는 건 전쟁에 가까운 일일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일본에는 퇴직 남편 생존법이란 것 까지 나왔습니다. 요리 청소 장보기를 배운다, 아내 말에 귀 기울이며 작은 일에도 고맙다고 말한다, 아내 눈을 보며 이름을 불러준다…. 그래도 우리 속담에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고 했습니다. "곯아도 젓국, 늙어도 영감"이라는 속담도 있지요. 

김종길 시인은 부뚜막에 놓인 한 쌍 질그릇을 보며 '부부'를 노래했습니다.

"오십 년이 넘도록 하루같이 함께 붙어 다니느라 비록 때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

아흔한 살 노(老) 시인은 지난해 70년 가까이 해로한 부인이 세상을 뜨자 열흘 만에 뒤따라갔습니다.

3월 22일 앵커의 시선은 '인천공항의 이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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