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이음피움 박물관

등록 2018.04.11 21:44

수정 2018.04.11 21:49

지난 1970년대 봉제공장들은 으레 밤 열 시까지 잔업을 시켰습니다. 그러면서 허기진 여공들에게 둥그런 '보름달' 빵을 하나씩 나눠줬답니다.

그런데 고향의 가족 생각에 이 빵조차 넘어가지 않는 여공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 여공들이 '빵계(契)'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배급 받은 빵을 하루 한 명에게 몰아줘 집으로 부치게 했다는 거지요.

밤을 새우는 특근때는 졸다가 미싱에 다치는 경우도 허다해서 각성제 '타이밍'을 군것질하듯 삼켰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타이밍 중독'이라고 불렀던 각성제 부작용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가족을 뒷바라지한다는 자부심으로 '공순이'라는 손가락질을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포기해야 했던 아픔만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얀 칼라 달린 교복 입고 등교하는 꿈을 밤마다 꿨습니다.

오늘 서울 창신동에 봉제 역사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떠받쳤던 한 기둥, 봉제업 50년 역사와 거기 깃든 삶의 이야기들을 모았습니다. 1961년 동대문 평화시장에 둥지를 틀었던 봉제공장들은 임대료가 오르자 근처 창신동 뒷골목으로 옮겨 갔습니다.

한창 때 3천 곳을 넘다가 중국과 동남아로 일감을 뺏기면서 700곳까지 줄었지요. 그래도 여전히 골목마다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 소리가 요란합니다. 평균 연령 쉰 살 가까운 봉제사들이 장인의 솜씨로 낡은 '미싱'을 돌립니다.

역사관 이름 '이음피움'은 실과 바늘이 천을 잇듯 서로를 이어 소통과 공감이 피어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창신동 골목에 이어 오는 우리네 누이들의 들꽃 같은 삶을 되새기고 공감하라는 얘기일 겁니다.

다시는 배고픔 겪지 않겠다며 졸린 눈 부릅뜨던 젊음들, 가난에 무릎 꿇지 않고 악착같이 일어서던 그 시대가 지금 우리에게 묻습니다. 풍요로운 이 시대 우리에게는 어떤 꿈이 있느냐고… 그리고 우리 사회가 너무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건 아닌가? 라고 말이지요.

4월 11일 앵커의 시선은 '이음피움 박물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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