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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영화처럼 살다간 최은희의 '인생역정'

등록 2018.04.17 21:38

수정 2018.04.17 21:44

[앵커]
원로 배우 최은희 씨의 별세 소식에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삶이 다시 조명받고 있습니다. 때로는 멜로영화 같이.. 때로는 첩보영화 같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고 최은희씨의 삶에 포커스를 맞춰봅니다.

 

[리포트]
신정균
"돌아가시는 날까지 어머님은 여배우셨어요."

태현실
"최은희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영화의 꿈을 키웠고..."

이장호
"제 속에 있는 영화 한세기가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이 들고.."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한 최은희는 '상록수'로 제 1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습니다.

최은희
"감개무량합니다. 너무나 가슴이 벅차올라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김지미, 엄앵란과 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불리기도 했죠. 1961년 김지미 주연 '춘향전'과 최은희 주연 '성춘향'이 동시에 개봉을 했는데..

춘향전 / 김지미 주연
"소녀는 기생이 아니고 이미 남의 아내된 몸이옵니다."

성춘향 / 최은희 주연
"하늘이 무너져도 소녀의 마음은 굽힐 수 없소이다"

'춘향 대결'로 불렸던 승부는 서울 관객 38만명을 동원한 최은희의 완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당시 상황을 조선일보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깨질 가능성이 없는 흥행기록의 최대극한을 시현한 것으로 영화계는 보고있다"

최은희 인생 최대 변곡점은 남편 신상옥 감독과의 만남일 겁니다. 실크CG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영화 대부분이 한국 영화의 고전들로 손꼽히는 작품들로 한국 영화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1978년, 영화광 김정일의 지시로 북한에 납치되며 시련이 찾아옵니다. 6개월 뒤엔 신 감독도 함께 납북돼 두 사람은 북에서 다시 만납니다.

국가기록원
"최은희, 신상옥씨가 북한 괴뢰에 강제 납치돼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북한에서도 두 사람은 17편의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그때 만든 영화 '소금'으로 최은희는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이었습니다.

최은희
"기립박수를 평생 처음 받아봤어요, 외국에 가서요. 그랬을 때 내가 그냥 소름이 쫘악 끼치면서.."

가까스로 탈출해 고국에 돌아와서도 극단 대표를 맡는 등 연기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2006년 신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건강이 악화되며 10년 넘게 투병 생활을 해왔습니다.

신영균
"신 감독 잘 만나서 거기서 신필름을 설립하세요. 좋은 영화 만드시면 나도 이제 따라가겠소."

고인이 생전 가장 좋아했다는 노래입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남편 신상옥과 연기 밖에 몰랐던 게 바보 같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바보 같은 인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는 배우 최은희.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그녀의 삶도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뉴스9 포커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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