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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포스코의 마패

등록 2018.04.19 21:46

수정 2018.04.19 21:55

혹시 '종이 마패'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포항 포스코역사관에 전시돼 있는, 빛바랜 메모지 한 장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1970년 포항제철 건설을 지휘하던 박태준 사장이 이권을 노린 정치인들의 압력에 시달리다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갔답니다.

박 대통령은 즉석에서 '포철이 자금 운용과 구매에 전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을 박태준에게 쓰게 한 뒤 왼쪽 상단에 친필 서명을 해줬습니다. 박태준사장이 10년을 간직한 이 메모지는 마패처럼 정치 외압을 물리치는 상징이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포항제철과 포스코 최고 경영자의 운명은 험난했습니다.

사의를 밝힌 권오준 회장을 포함해 역대 회장 여덟 명 중에 여섯 명이 정권 바뀔 때마다 중도 퇴진했습니다. 그 과정에 검찰 수사와 세무조사가 벌어지곤 했지요. 이 공식은 민영화 이후 정부 주식이 단 한 주도 없는 상황에서도 이어졌습니다.

권오준 회장은 새 정부 출범 후 여섯 차례 대통령 해외순방에 한번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세무조사 설이 끊이지 않았고, 시민단체가 고발한 포스코 관련 의혹은 검찰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전임 정준양 회장도 대통령 순방과 총수 오찬에서 배제됐습니다. 전방위 세무조사가 시작됐고 검찰 수사 끝에 결국 기소됐습니다. 지금 정부가 닮지 않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때의 일입니다.

포스코는 외국인 지분이 57%나 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입니다.

권오준 회장은 경영위기를 극복하고 6년 만에 최고 실적을 올렸습니다. 그런 경영자가 정권 바뀌자 물러나는 것을 보며 어느 외국인 주주가 고개를 끄덕이겠습니까. '종이 마패'는 포스코의 30년 잔혹사를 미리 내다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세상의 마패는 주주에게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마패조차 무기력한 곳이 2018년 대한민국입니다.

4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포스코의 마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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