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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풍운아 JP, 온몸으로 담아낸 영욕의 현대사

등록 2018.06.23 19:10

수정 2018.06.23 21:10

[앵커]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 김종필 전 총리는 3김 중 유일하게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지만 특유의 정치력으로 각 정권의 탄생에 기여했습니다.

5.16의 중추였으며 초대 중앙정보부장, 그리고 국회의원 9선 43년 간의 정치 역정을 '포커스'에 담았습니다.

 

[리포트]
1926년 충남 부여의 부유한 한학자 집에서 태어난 김종필 전 총리는 서울대 사대를 다니다 49년 육사 8기로 입학했습니다.

1961년 중령이던 김 전 총리는 처삼촌인 박정희 소장과 함께 5·16 군사정변에 중심 인물로 참여했습니다. 이후 지금의 국정원인 중앙정보부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부장을 맡았습니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대통령 특사로 중화민국 독립 5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6일 대만을 방문했습니다"

62년에는 마사요시 일본 외상과 회담을 갖고 한일국교 정상화에 나섰지만

"그리고 일본을 방문해서는 한일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63년 준장으로 예편한 김 전 총리는 공화당 창당을 주도했습니다.

제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6대 총선까지 모두 9선을 지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박준규 전 국회의장과 함께 최다선 기록입니다.

87년 13대 대선에서는 4등에 그쳤지만,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을 확보해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이후 공화당을 이끌던 김종필 당시 총재는 90년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통일민주당의 김영삼과 함께 '3당 합당’에 동참합니다.

노태우 대통령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 우리 세 사람은 민주 번영 통일을 이룰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기 위해..."

YS의 대통령 당선 이후 민자당 대표에 올랐지만 의원 내각제 갈등으로 김 전 총리는 다시 충청을 터전으로 자민련을 만듭니다.

97년 대선을 앞두고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후보와 단일화를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했습니다. 이른바 DJP연합은 사실상 최초의 정권 교체를 일궈내 대한민국 정치사를 다시 쓰게 했습니다. 그는 또 한번의 총리, 또 한번의 2인자로 새롭게 부각됐습니다.

DJP 1주년 기념식
"우리 대통령을 모시고 그리고 이나라 책임져서 어려운 것을 해결하자 하고..."

하지만 내각제 개헌 파동과 임동원 당시 통일부장관 해임안 가결을 두고 벌인 갈등으로 DJ와는 결별했습니다.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10선을 노리며 재기를 꿈꿨습니다. 

"바램은 있지만 얼마나 선택을 해주실런지는 결과를 봐야죠"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고, 결국 김 전 총리는 정계 은퇴를 선언합니다.

"국민들이 선택한것이니까 조건없이 승복을 하고 오늘로 나는 총재직을 그만 두겠습니다"

정치인생 곳곳에서 승부수를 던졌던 DJ와 YS에 비해 늘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였던 장고의 JP...

'영원한 2인자'는 본인의 숙원이던 내각제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정치의 격변을 온몸으로 겪었던 '풍운아' 운정은 그렇게 영면했습니다. 포커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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