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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살라미 전술의 늪

등록 2018.07.09 21:53

수정 2018.07.10 23:01

살라미는 훈제 대신 소금과 향신료를 듬뿍 넣고 말린 이탈리아 소시지입니다. 짜고 향이 강하고 딱딱해서 조금씩 얇게 잘라 먹는게 특징이지요. 2차대전 직후 헝가리 공산 독재자 라코시는 극우부터 극좌까지 반대파를 하나씩 야금야금 제거한 뒤 "살라미 조각처럼 잘라냈다"고 했는데, 거기서 나온 용어가 '살라미 전술'입니다.

공산 독재체제 수립과정이나 소련의 주변국 공산화 전략을 뜻하다 10여년 전부터는 북한의 핵협상 전술에도 이 말이 쓰이고 있습니다. 협상카드를 잘게 쪼개 하나씩 테이블에 올리면서 그때마다 양보와 보상을 얻어내 최대한 챙기고 시간도 버는 방식이지요. 북한이 핵 완성단계까지 온 것도 끈질긴 살라미 전술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빈손으로 돌려보낸 과정도 이미 봤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듭니다. 북한은 비핵화 논의는 제쳐놓고 정전 협정과 제재 완화를 들고 나왔습니다. 금방 내줄 것 같던 미군 유해도 뜸을 들이면서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 역시 핵 협상의 늪에 빠져드는 서막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런 장면은 미북 정상회담에서 추상적인 합의로 첫 단추를 허술하게 끼웠을 때부터 예고됐습니다. 그 뒤로 미국 입장이 계속 느슨해져서 조건 없는 비핵화로 원샷 타결을 하겠다던 호언장담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습니다.

"(비핵화를) 서두르면 스토브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좋지 않을 것입니다"

트럼프가 중간 선거를 앞두고 몸이 달아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북한이 고분고분하게 나온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겁니다. 폼페이오의 방북에 동행했던 한 미국 기자는 북한 당국이 자신들의 여권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며 "마치 폼페이오가 북한을 방문하지 않은 것 같았다" 라는 말로 취재기를 마무리했습니다. 그 한 줄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7월 9일 앵커의 시선은 '살라미 전술의 늪'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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