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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더 스퀘어'…신뢰와 배려의 사각지대

등록 2018.08.07 17:32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고찰한다는 점에서 루벤 외스틀룬드는 홍상수와 닮았다. 차이라면 홍상수의 화살은 인간의 찌질한 본성을, 루벤 외스틀룬드는 공허한 지성을 겨눈다는 데 있다.

문학으로 치자면 루벤 외스틀룬드는 이기호와도 통한다. 단편 '최미진은 어디로'에서 이기호는 소설가의 찌질함을 정밀묘사 했다. 주인공은 자신의 친필 사인본을 중고나라에 처분하려는 네티즌을 추적한다. 그러곤 끝끝내 참았던 질문을 던진다. "왜 내 책만 무료 증정인 거예요?"


 

[영화리뷰] '더 스퀘어'…신뢰와 배려의 사각지대
 

식자층의 허례허식은 문학과 영화의 단골 소재다. 위세 좋던 지성인도 속을 들춰보면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더 스퀘어'는 예술가의 이런 꺼풀들을 하나씩 벗겨낸다.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앙은 프로젝트 '더 스퀘어'를 준비 중이다. '더 스퀘어'는 작품이면서 물리적 공간이다. 적어도 이 사각 테두리 안에선 서로 믿고 배려하자는 의미다. 하지만 '행동하는 지성'은 쉽지 않다. 크리스티앙은 도움을 청하는 약자를 외면하고, 적선을 했다가도 후회하며,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겠다고 불특정 다수를 도둑 취급한다. 피해를 본 소년이 찾아와 사과를 요구하지만, 이 역시 가볍게 묵살한다.

 

[영화리뷰] '더 스퀘어'…신뢰와 배려의 사각지대
 

소위 지식인의 이런 이중성은 유인원 퍼포먼스에서 처참하게 까발려진다. 미술관 파티에 유인원을 연기하는 행위예술가가 등장한다. 청중은 물론 예술 향유가 일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퍼포먼스가 필요 이상으로 폭력성을 띠는데도 누구 하나 저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유인원의 상대가 내가 되지 않기만 바란다. 보다 못한 노신사가 유인원을 제압하려 일어서고, 머뭇대던 사람들은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젠체하던 지성인들의 민낯. 관객은 흡사 번듯한 누군가의 뒤 닦는 모습이라도 본 듯 찜찜해진다.

영화는 크리스티앙을 자주 사각 프레임 안에 넣는다. 계단을 오를 때도, 쓰레기를 뒤질 때도, 그는 늘 '스퀘어' 안에 있었다. 확실히 신뢰와 배려는 '더 스퀘어' 안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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