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슬픔의 품격

등록 2018.08.13 21:52

수정 2018.08.13 21:56

2014년 미국 기자 제임스 폴리가 이슬람 무장조직 IS에게 희생당하자 폴리의 어머니가 성명을 냈습니다. "아들이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아들이 우리에게 줬던 기쁨에 감사합니다. 그는 훌륭한 아들이자 형제, 기자, 인간이었습니다." 슬픔을 가슴 속 깊이 묻어둔 당당함에서 오히려 더 깊은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어머니는 "미국의 정책은 인질극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듬해 또 IS에게 희생된 일본 기자 고토의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지만 성명은 간명하고 힘있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이) 세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듯 슬픔이 증오의 사슬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두 어머니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자식을 잃는 것보다 모진 고통은 없을 겁니다. 더구나 군 복무를 하다 어이없는 사고로 자식이 숨졌다면 얼마나 참담하고 억울 하겠습니까. 얼마전 마린온 헬기가 추락해 순직한 해병대 다섯 장병의 유족은 그러나 슬픔과 분노를 안으로 품었습니다. 장례를 챙기고 유가족을 살펴준 해병대에 감사하면서 시민과 군 조의금 5천만원을 모두 기부했습니다.

유족 대표인 고 박재우 병장의 작은아버지는 "전우를 잊지 않는 해병대 정신을 본받도록 두 아들을 해병대에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한 순직 장병의 부인은 "남편이 소원했던 항공단을 꼭 창설해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나라가 순국 장병에 대한 관심과 예우를 소홀히 하는 사례를 이미 여러번 봐왔습니다. 마린온 사고도 애도와 위로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국방장관이 국회에 나와 "유족들이 의전에 흡족하지 않아 짜증이 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래도 유족들은 해지고 문드러진 가슴을 추스르며 증오 대신 감사를 말했습니다. 이 품격 있는 슬픔의 표현이 분노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 줄기 시원한 소나기처럼 느껴집니다. 8월 13일 앵커의 시선은 '슬픔의 품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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