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죄와 벌

등록 2018.08.15 21:45

수정 2018.08.15 22:00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한다" 1955년 일흔명 넘는 여성을 농락해 혼인빙자 간음죄로 기소된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에게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 법원은 유죄로 뒤집으면서 댄스홀에 다닌다고 다 내놓은 정조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54년 뒤 혼인빙자 간음죄를 폐지하면서 헌법재판소는 이 죄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했습니다. 성관계는 스스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 책임질 문제라는 겁니다. 성적 결정권은 간통죄 폐지 때도 가장 중요한 사유였습니다.

1994년 '우 조교 사건'에서 법원은 조교에게 불쾌한 성적 언행을 한 지도교수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직장 내 위력을 이용한 성희롱 책임을 물은 첫 판결이었습니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위력'은 안희정 전 지사 사건 재판부가 무죄 판단의 근거로 제시한 핵심 단어입니다. 원고 김지은씨가 성적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성인이고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한 증거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현행법에서는 김씨가 회피와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고충을 내비쳤습니다. 성폭력의 기준을 피해자의 저항보다 동의 여부에 두는 두 가지 외국 사례를 영어로 든 겁니다. '노우 민스 노우'는 저항하지 않았어도 거부 의사를 밝혔으면 강간으로 처벌하는 법 개념입니다. 더 나아가 '예스 민스 예스'는 무저항부터 침묵까지 어떤 경우라도 명백한 동의가 없으면 강간으로 판단합니다.

이번 판결은 여성계의 거센 반발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 성폭력 처벌기준 강화를 숙제로 제시했습니다. 무엇보다 직장 내 성범죄에 대한 면죄부로 오해 받아 미투 운동의 취지를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겁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다시 태어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피고인 안희정은 1심 무죄를 받았지만, 정치인 안희정의 도덕성은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8월 15일 앵커의 시선은 '죄와 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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