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통일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만남과 기다림

등록 2018.08.20 21:54

수정 2018.08.20 22:00

"딸은 아주 나 떠날 적에 나한테 신을 사달라고 했어요…"

2015년 이산가족 상봉 때 아흔여덟살 할아버지는 두 딸에게 줄 꽃신을 선물로 가져갔습니다. 6.25 때 인민군에 끌려가면서 여섯살, 세살 딸에게 "고추를 팔아 꽃신 사다주마"라고 했던 약속을 65년 만에 지켰습니다.

2014년 상봉 때 여든네살 할머니는 북의 남편에게 새 구두를 선물했습니다. 할머니는 결혼 일곱달 만에 남편과 이별한 뒤 홀몸으로 살며 삯바느질로 시부모 봉양하고 유복자를 키웠습니다. 남편이 남기고 간 구두를 65년 동안 간직하고 매만지며 그리움을 달랬습니다. 낡은 구두는 할머니의 모진 삶에서 등불 같은 위안이었습니다.

이산가족의 선물엔 깊은 그리움, 긴 기다림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금강산에서 상봉을 시작한 분들도 가방 가득 선물을 꾸려 갔습니다. 백 한살 할아버지는 며느리와 손주 주려고 옷과 내의, 신발 서른 켤레, 수저 스무 벌, 치약 칫솔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팬티, 양말… 없는 것 없이 다 샀어…"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한 지 33년이 됐지만 선물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옷, 생필품, 의약품, 라면, 초코파이… 그만큼 북한의 삶이 정체돼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한번에 백명씩 이제 겨우 스물한번째 만나는 현실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번 상봉단 아흔세분 중에 아흔살 이상이 서른다섯분에 이르렀습니다.

누굴 만나시느냐는 질문에 백한 살 할아버지는 맥없이 대답합니다.

"며느리… 다 죽고 없어…"

어제 상봉단이 머문 속초 숙소 앞에서 예순 후반쯤 돼 보이는 분이 호소문을 펴 들었습니다. '90세 참전용사 아버지, 죽기 전에 한번만 보내주세요.' 로또 같은 상봉자 명단에서 번번이 탈락한 아버지 뵙기가 안타까워서 아들이 나선 겁니다. 

상봉 신청자 중에 아흔살 넘은 분만 1만2천명을 넘습니다. 상봉장의 눈물과 기약없는 기다림이 엇갈리는 오늘입니다. 8월 20일 앵커의 시선은 '만남과 기다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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