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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페트병 세리머니의 그늘

등록 2018.09.12 21:45

수정 2018.09.12 22:24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본이 벨기에에게 패해 탈락한 날, 일본 선수단과 응원단의 뒤처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경기가 끝나자 일본인들은 눈물 범벅인 채 봉지에 쓰레기를 주워담았습니다. 일본 선수들이 썼던 라커룸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탁자엔 러시아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메모가 남아 있었습니다.

일본인은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그런 문화가 일본을 집단주의 사회로 만들었다고 비판했고, 일본 내에서도 지나치다는 반성이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엊그제 일본에서 열린 18세 이하 아시아 야구대회 결승 이후 이와는 대조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대만을 물리치고 우승을 한 뒤 마운드에 모여 서로 물을 뿌리며 기뻐했습니다. 그럴 만도 했겠지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마운드에 빈 페트병을 그대로 두고 나와 버린 겁니다.

대회 관계자가 통역에게 "페트병을 치우라고 말하라"고 했지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표팀 김성용 감독은 일본 기자에게 "어린 선수들이 흥분했고 배려가 부족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물론 이 문제를 부각한 일본 언론의 시각에 한국팀 우승에 대한 질시가 전혀 없었다곤 볼 수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에 되돌아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운동을 시키는 근본 이유에 대한 것이지요. 승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스포츠를 통해 준법, 정직, 책임, 협동 소통 배려를 깨닫도록 하는 것 말입니다.

얼마 전 우리 대학생 가치관 조사에서 81%가 "고등학교 시절은 사활을 건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10~40퍼센트대인 미국 중국 일본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스포츠에서도 경쟁과 승부욕만 배우는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페트병 사건은 보기에 따라 사소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9월 12일 앵커의 시선은 '페트병 세리머니의 그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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