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전등 끄는 청년들

등록 2018.10.25 21:46

수정 2018.10.25 21:50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정희성 시인의 명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배경은, 1970년대 난지도 샛강바닥을 청소하는 새마을 취로사업입니다. 또 하루, 삽질을 끝낸 사내는 고달픈 삶의 비애를 강물에 흘려 보내고, 먹을 것 없는 집으로 돌아섭니다.

빈민, 영세민에게 근로 기회를 주는 구호사업은 1964년 자조근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원조를 재원으로 삼아 노임을 곡식으로 지급했지요. 원조가 끊긴 1974년부터는 재정으로 운영하면서 이름을 취로사업으로 바꿨습니다. 그나마 경쟁이 심해서 불임수술을 한 사람에게 취로사업 우선권을 줬습니다. 아이 낳자고 아우성인 지금 돌이켜보면 까마득한 옛날 같습니다.

어제 정부가 내놓은 '맞춤형' 일자리 대책은 '취로사업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학의 빈 강의실 전등 끄기, 전통시장 청소, 독거노인 방문, 라돈 침대 조사 같은 두어 달짜리 일자리를 6만개 가깝게 만든다고 합니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예전 정부도 비슷한 단기 일자리 대책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경제 위기를 맞아 취약층을 도우려는 생계형 대책이었던 데 비해, 이번 대책은 성격이 조금 달라 보입니다.

겨울이 되는 연말이면 취업자가 80만명쯤 줄기 때문에 흐름을 반전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평상시라면 꺼리는 수단도 동원했다는 겁니다. 기재부 차관이 대책 발표에 앞서 털어놓은 얘깁니다. 고용 통계를 의식한 꼼수라는 지적이 있지만 정부의 고민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빈 강의실을 돌며 전등 끄고 다니는 청년을 상상해 봅니다. 저문 강에 삽을 씻는 취로사업 사내 못지않게 처연한 심정일 겁니다. 질 좋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는 결국 기업이 만들어 낼 수밖에 없습니다. 청년의 가슴에 열정의 불을 당기는 진짜 일자리 대책은 언제쯤 나올까요?

10월 25일 앵커의 시선은 '전등 끄는 청년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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