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해넘이, 그리고 해맞이

등록 2018.12.31 21:56

수정 2018.12.31 22:03

"지금까지는 내가 시간을 함부로 썼는데, 이제 시간이 나를 함부로 하는구나…."

셰익스피어 연극 '리처드 2세'의 명대사입니다. 어렸을 적엔 오후 반나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습니다. 동네를 쏘다니며 지치도록 놀다, 어머니가 이름 부르며 "밥 먹어라" 외칠 때까지도 해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면 몇 년도 오후 반나절처럼 순식간입니다.

열 살 때 시속 10km로 가던 세월이 쉰 살에는 시속 50km로 간다는 말이 우스개가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뇌의 생체시계가 나이 들수록 느려지면서, 상대적으로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 것처럼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쏜살같이 달아났습니다.

새해 새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또 다른 새해가 코앞에 왔습니다. 지난 한 해도 가족, 친구, 이웃 가슴에 얼마나 많은 못을 박았는지 헤아리기 힘듭니다. 낯 뜨거운 실수와 실패들은 자기 가슴에도 자책의 못으로 날아와 박힙니다.

시인이 아내와 함께 성당에서 고백성사를 했습니다. 못 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척했습니다. 남편은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못한 못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 차마 뽑지 못한 못, 저마다 한 두 개쯤 품고 있을 세밑입니다.

하지만 묵은 해와 새 해의 경계에 서면 좌절과 부정보다는 참회와 긍정이 솟기 마련입니다. 채근담도 "하루 해 저물 때 저녁 노을 오히려 아름답고, 한 해 저물 때 귤 향기 더욱 새롭다"고 했습니다.

지난 한 해 남의 가슴에 박은 못, 내 가슴에 박힌 못 모두 뽑아내고 후련한 가슴, 맑은 머리로 새해를 맞아야겠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당연한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세밑입니다. 여러분, 못 뽑으셨습니까?

무술년 마지막 날 앵커의 시선은 '해넘이, 그리고 해맞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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