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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심석희의 고통스러운 용기

등록 2019.01.10 21:45

수정 2019.01.10 22:31

영화 '쿨 러닝'은 잘 아시듯, 열대 자메이카 선수들의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출전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겁니다. 경기 전날 한 선수가 어떻게든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하자 코치가 말하지요.

"금메달이 없어서 만족하지 못한다면, 금메달을 얻어도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2014년 소치올림픽이 끝난 뒤 우리 선수단장의 기자회견 장면도 되돌려 봅니다.

"목표(금메달 4개) 달성에 실패한 것에 대해… 밤낮으로 열심히 응원해주신 국민께 죄송합니다…"

심석희 선수도 소치에서 은메달을 딴 뒤 "금메달을 기대하셨는데 죄송하다"며 울먹였습니다. 열일곱살 앳된 소녀의 눈물을 보며 오히려 제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심석희 선수가 고통스러운 용기를 내, 가족에게도 숨겨온 상처를 드러내 보였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금메달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금메달이 무엇이기에, 꿈 많은 어린 소녀를 그토록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리게 만들었을까 싶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가 앞장서서 엘리트 선수를 키우는 스포츠 국가주의 체제를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체육특기자 제도를 만들어 진학 때 우대하고, 선수촌을 지어 합숙훈련을 시키고, 금메달에 병역면제와 포상 연금을 내걸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선수가 감독과 코치, 체육단체에게 무조건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 눈밖에 나면 선수 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갖은 굴욕과 폭력을 견뎌야 합니다.

심석희 선수도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 없느냐는 협박을 수시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체육계 안팎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많다고 합니다.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체육계의 침묵의 카르텔이 깨졌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침묵의 카르텔' 이럴 줄 알면서도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얘기지요.

정부는 대책을 얘기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건 통렬한 반성일 겁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스포츠 국가주의에 대한 국민적 재검토가 절실합니다.

메달 빛깔과 숫자, 등수가 곧 국력이라는 착각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습니다.

1월 10일 앵커의 시선은 '심석희의 고통스러운 용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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