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노포의 추억과 재개발

등록 2019.01.18 21:48

수정 2019.01.18 21:52

서울 을지로 공구상가에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 사이로 좁은 통로가 나 있습니다. 뒷골목 냉면집으로 들어서는 이 복도 벽에 빛바랜 북한 지도와 옛 평양 사진, 이북 5도민 신문이 붙어 있습니다.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놓아뒀습니다. 실향민 손님들을 위한 여주인의 배려입니다.

소주 반 병, 편육 반 접시를 차려주는 것도 혼자 오는 연로한 실향민을 생각해서지요. 붐비는 점심시간에 황해도 사람 송해 영감님이 슬그머니 합석해 한 그릇 비우고 가기도 합니다. 이 집은 의정부에 이름난 냉면집의 실향민 아버지로부터 딸이 손맛을 물려받아 34년 전에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 쩨쩨한 뒷골목 구석구석에는 더 오래된 맛 집들이 여럿 숨어 있습니다. 오륙십 년 된 허름한 드럼통 고깃집부터 양곱창집, 감성돔 횟집, 노가리골목까지 서민의 애환이 밴 집들이지요. 이 노포들이 재개발로 철거된다는 소식에 아쉬워하는 단골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세 든 가게들이어서 폐업하거나 멀리 떠나야 할 형편이 된 겁니다. 

냉면집이야 워낙 유명해서 근처로 옮겨가면 되겠지만 지금 분위기와 맛이 제대로 나겠느냐는 걱정도 나옵니다. 종로 재개발로 사라진 피맛골처럼 될 거라는 걱정이지요. 비오는 날 피맛골 빈대떡집 다락에서 막걸리 기울이던 정취를 기억하는 분들에게 재개발은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자 박원순 시장이 을지로 노포들을 보존할 수 있게 재설계를 요청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단골들에겐 반가운 소식이겠습니다만 사업인가까지 내준 재개발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문화재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얘기와 함께, 너무 가볍고 즉흥적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습니다.

어느 정치인이 측근들의 이름으로 다 쓰러져가는 목포 구도심 집 여러채를 사들였다는 얘기에 을지로 재개발을 둘러싼 이런저런 얘기까지 겹쳐져 도심재생 사업이 시민 정서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할지 새롭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1월 18일 앵커의 시선은 '노포의 추억과 재개발'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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