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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수의 입은 前 사법부 수장

등록 2019.01.24 21:44

수정 2019.01.24 21:51

1981년 전두환 정권 출범 직후, 이영섭 대법원장이 취임 2년 만에 물러났습니다. 그러면서 퇴임사 원고에 사법부의 한자를 일부러 이렇게 ‘사법부(司法部)’ 라고 썼습니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이‘독립관청 府’자 대신, 행정부 일개 부처(部處)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이 部자를 써서 자조한 겁니다.

건국 후 대법원장을 지낸 열세 명 중에 6년 임기를 못 채운 사람은 네 명입니다. 정치권력과 충돌하거나 정권 교체기에 자의반 타의반 물러나곤 했습니다. 그 후임 유태흥 대법원장은 임기는 채웠지만 판사 인사파동으로 탄핵 소추 발의를 당하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퇴임 후 외롭게 살다 극단적 선택까지 했습니다.

오욕과 회한으로 얼룩진 사법부 71년 역사에서 그러나 수의 입은 전직 사법부 수장보다 더한 치욕은 없었습니다. 이미 수감돼 있는 두 전직 대통령에 이은 또 하나 ‘헌정사의 비극’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시를 인용하며 “상처투성이 고목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고목처럼 모든 상처를 껴안는 자세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통렬한 자기 반성을 기대하던 많은 국민을 실망시킨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 해도 도주 우려가 없는 전 대법원장을 구속까지 시킨 게 온당한가 하는 논란은 여전히 남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전임 법원장의 의혹을 법원 안에서 풀지 못하고 검찰 수사를 불러들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두고 두고 법원 갈등의 씨앗이 될 거란 우려도 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적 유무죄는 판결로 가려지겠습니다만, 사법부 신뢰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당장 일부 단체들이 이해관계가 걸린 기존 판결들을 부정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사법부가 안으로 이념과 진영에 따라 반목하고, 밖으로 정치적 계절풍에 흔들린다면 신뢰는 영영 돌이킬 수 없을 겁니다. 미국 같은 종신 대법관제가 아닌 임기제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우리 체제도 한번쯤 돌아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1월 24일 앵커의 시선은 ‘수의(囚衣) 입은 전 사법부 수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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