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설, 고향, 아버지

등록 2019.02.01 21:47

수정 2019.02.01 21:53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여덟 살 되도록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여탕에 갈 수 없게 큰 뒤에는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본 것은, 당신이 쓰러진 뒤였습니다.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셨습니다.

시인은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며 이 시를 썼습니다. 아버지가 등에 꽁꽁 숨겨뒀던 멍에를 보면서, 노름 좋아했던 아버지에게 평생 품은 원망을 풀었습니다. '해가 지면 달을 지고, 달이 지면 해를 지며' 아버지로 살아야 했던 고단한 삶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자식은 인생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야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볼 눈을 뜨게 됩니다. 아버지처럼 실수도 실패도 해보고 후회도 하면서 아버지가 결코 완벽한 존재일 수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그 연민은 아버지를 극복하고 보듬는 디딤돌입니다.

또 어느 시인은 설을 가리켜 "가장 순결한, 한 음절의 모국어"라고 했습니다. 그 따스한 음절 '설'을 되뇌이기만 해도 떠오르는 이름이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고향입니다. 어머니야 더 말할 나위 없이 아늑한 품이기에 이번 설에는 아버지 거친 손 한번 꼭 잡아드리면 어떨지요.

이제는 자식도 나이 들어서, 고향에 가도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신다면 집안 곳곳에 배 있을 당신의 흔적들을 가만히 어루만져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행복하게도 아버지 살아 계신다면, 술 한 잔 주십시오, 해보시지요. 아버지도 장성한 아들에게 술 권하는 설이 눈물 날 듯 푸근할 겁니다.

"자식도 크면 친구 되지. 이만 나이 먹으면, 잡초같이 산 인생이라도 흐뭇하구나. 자, 너도 한잔 받아라…"

2월 1일 앵커의 시선은 '설, 고향, 아버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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