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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섣달 그믐 밤

등록 2019.02.04 21:45

수정 2019.02.04 21:50

구한말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은 우리 고유문화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아이들이 젓가락으로 콩자반 집어먹는 걸 보고 “저건 식사가 아니라 곡예”라고 감탄하기도 했지요.

젊은이들이 어른 모시는 몸가짐을 보면서는 “다시 태어나면 노인천국 조선에서 노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서울 YMCA를 세우고 이승만의 미국 유학을 주선했는데 그가 유난히 탄복했던 게 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설레며 기다리는, 축제 같은 날. 세뱃돈이라는 황홀한 선물이 기다리는 날. 내 어릴 적 크리스마스 같은 날” 이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무자비한 현대문명 앞에서 축제의 날은 갈수록 쇠퇴할 것” 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설은, 나라가 들썩이는 한바탕 축제입니다. 피붙이를 찾아가는 행렬이 길마다 물결칩니다. 그렇게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은, 그리움입니다.

설 차례상 음복 한 잔에 발그레해진 시인의 얼굴도, 어머니 보고픈 간절한 그리움의 빛깔입니다. “설날 아침, 막내 손 시릴까봐, 아득한 저승의 숨결로, 벙어리장갑 뜨고 계신, 나의 어머니.” (오탁번 ‘설날’).

명절이면 편의점에서 잘 팔리던 화투가 지난 5년, 해마다 2 내지 7퍼센트씩 매출이 줄었다고 합니다. 반면 20에서 50퍼센트씩 늘어나는 대목 상품이 휴대전화 충전기입니다.

가족이 갈수록 단출해지면서 화투놀이 할 머릿수는 줄고, 혼자 휴대전화 들여다보는 시간은 늘었다는 얘기일 겁니다. 그래도 설이 따스한 것은, 많건 적건 가족이 있어서입니다.

며칠 몸살을 앓던 고속도로도 이제는 정적에 잠겼습니다. 일찍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고 해서 억지로 잠을 참던 섣달 그믐 밤입니다.

지금 다들 가족이 무릎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 피우고 계시겠지요. 자랑스러운 일, 슬픈 일 함께 나누면 기쁨은 곱절, 설움은 절반이 됩니다. 그렇게 또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2월 4일 앵커의 시선은 ‘섣달 그믐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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