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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바보 성자, 김수환

등록 2019.02.12 21:44

수정 2019.02.12 21:50

"수환아, 아빠 엄마가 옹기장수인 게 부끄럽지 않니?"

"저는 오히려 자랑스러운 걸요. 순교하신 할아버지처럼 아버지도 옹기를 팔며 신앙을 지키시다가 돌아가셨잖아요"

옹기는, 박해를 피해 산속에 숨어 살던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생계수단이자 포교수단이었습니다. 그 옹기를 김수환 추기경은 당신의 호로 품었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심지어 오물까지, 모든 것을 담아내는 옹기" 이고자 했습니다.

김 추기경이 크레파스로 그리고 '바보야'라고 쓴 자화상입니다. 그렇듯 스스로를 '바보'라고 불렀습니다. 은퇴한 뒤 어린 신자들과 따스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는 '혜화동 할아버지'로 불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이번 주말이면 김 추기경이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 선종한 지 꼭 10년이 됩니다. 혹한이 몰아치던 명동성당 빈소에 40만 추모객이 줄을 서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가파른 현대사 굽이굽이마다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며 그가 우리와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 위안받았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병들고 핍박받는 이들에게 일생을 바친 끝에 두 눈을 앞 못 보는 이들에게 주고 갔습니다. 그는 억압과 불의에 단호하게 맞섰지만 삶은 늘 겸손과 청빈, 인간미로 향기로웠습니다.

그가 꼽은 가장 행복한 시절은 가난한 신자들과 함께했던 본당 신부 시절이었고, 가장 그리워한 풍경은 어릴 적 국화빵 팔러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바라보던,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이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 마종기 시인이 오래 전에 쓴 시 '선종 이후'는 나중에 김 추기경에게 바치는 절절한 헌사로 되살아났습니다.

"당신의 웃음은 무기물질이다. 불 태워도 타지 않고, 땅에 묻어도 도저히 변하지 않는, 불멸의 악곡이 되어, 깊이깊이 연주되는…"

사회에 큰 어른이 없는 시대, 갈등과 대립, 반목이 일상이 된 시대, 김 추기경의 따스한 미소가 유난히 그리운 요즈음입니다.

2월 12일 앵커의 시선은 '바보 성자, 김수환'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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