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블랙리스트의 추억

등록 2019.02.19 21:45

수정 2019.02.19 22:16

"내가 땅 사면 투자, 남이 사면 투기"
"내가 하면 예술, 남이 하면 외설"

1990년대 초 나돌던 우스개들입니다.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콩트집도 나왔지요. 이 말을 정치권에 퍼뜨린 이가 박희태 전 국회의장입니다. 1996년 야당이 여당의 의원 빼가기를 비난하자 한 해 전 야당도 그러지 않았느냐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바람 피우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

그 뒤로 '내로남불' 넉 자로 압축돼 사자성어처럼 유행했습니다만 이 말이 요즘같이 자주 거론된 적도 없었던 듯합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출국을 금지시켰습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을 환경부가 표적 감사한 문건을 찾아낸 데 이어, 이 문건이 김 장관 전용 폴더에도 저장돼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겁니다.

문건의 임원 명단에는 이런 단어들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타깃' '사직서 제출 유도'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감사' '목적 달성 때까지 감사 지속' '거부 시 고발' 누가 봐도 블랙리스트와 사찰의 음습한 냄새가 풍기는 단어들입니다. 김 장관은 지난해 국회에서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내라고는 했지만 자신에겐 인사권이 없다고 했습니다.

"청와대하고 상의해서 했습니까, 장관님 판단입니까"
"환경관리공단의 임명 권한은 사실 제게 없습니다."

전 청와대 특감반원 김태우씨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폭로하면서 했던 말도 새삼스럽습니다. "특감반장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며 330개 공공기관장과 감사 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 검찰 수사상황과 관련해 청와대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김씨의 잇따른 폭로에 대해 "미꾸라지 한 마리"라거나 "문재인 정부 유전자에는 민간인 사찰이 없다"고 했던 것과는 사뭇 억양이 다릅니다.

분명한 것은, 정의란 누군가 독점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은 국민과 역사가 할 겁니다.

2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블랙리스트의 추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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