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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춘래불사춘

등록 2019.03.04 21:48

수정 2019.03.04 22:01

옛 선비들은 한겨울 동짓날이면 여든한 송이 하얀 매화, 구구소한도를 그려 벽에 붙여놓았습니다. 아흐레마다 아홉 차례 밀어닥치는 추위, 구구 팔십일일을 견디며 하루 한 송이씩 붉은 칠을 했습니다. 그렇게 백매가 모두 홍매로 바뀌는 날, 소한도를 걷어내고 뜰에 핀 매화를 맞았습니다.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 라고 노래했던 영국 시인 셸리의 기다림 그대롭니다. 남녘의 봄은 섬진강 하구로 올라옵니다. 나흘 뒤 주말이면 섬진강변 광양 언덕에 온통 소금 뿌려놓은 듯 매화가 흐드러집니다.

동지 지난 지 77일 만이고 예년보다 열흘이나 빠릅니다. 알큰한 매화 향기가 구례 산수유꽃을 깨워 지리산자락을 노랗게 물들이면, 강 건너 하동 십리길도 벚꽃으로 뒤덮이겠지요.

그런데 '춘래불사춘' 이라고 했던가요, 코앞에 온 봄이 봄 같지가 않습니다. 연일 구름 없는 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하늘은 부옇고 공기는 매캐합니다. 오늘까지 열사흘 동안 단 하루만 초미세먼지 걷히고 잠깐 파란 하늘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봄철에 고농도 미세먼지가 가장 오래 지속된 기간은 작년 3월의 여드레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기세를 보면 기록 갱신은 시간문제고, 무엇보다 강도가 어느 때보다 셉니다. 3월 들어서자마자 초미세먼지 기준치 네 배를 쉽게 넘나들고 있습니다.

'봄'은 '보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동토에서 솟아나는 새 생명의 경이로움을 벅찬 가슴으로 바라보는 계절이라는 얘기겠지요. 그래서 시인도 싱그러운 봄빛을 보려고 유리창부터 말갛게 닦습니다.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빛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빛도 닦으리…"

하지만 이제 우리의 봄은 유리창을 아무리 닦아도 소용없는 계절이 됐습니다. 찬란했던 봄이어서 더 분하고 억울합니다.

3월 4일 앵커의 시선은 '춘래불사춘'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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