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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한반도 운전자의 오지랖

등록 2019.04.15 21:49

수정 2019.04.15 21:55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 반장'

스물여섯 자짜리 긴 제목을 단 이 영화에서 고 김주혁씨가 연기한 홍 반장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참견합니다. 그런 홍 반장을 보며 여주인공이 비아냥댑니다.

"세상에서 제일 할일없는 사람 같지 않냐?"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지?"

홍 반장은 아마도 한국 영화에서 가장 오지랖이 넓은 인물형일 겁니다.

오지랖이란, 겉에 걸치는 웃옷의 앞자락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오지랖이 넓다'고 하면, 쓸데없이 주제넘게 남의 일에 끼어들어 참견하고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 됩니다.

이 말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등장했습니다.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한반도 운전자를 자임하며 미북 간 중재외교를 벌여온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무례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한 겁니다.

북한은 그동안 문 대통령의 운전자론에 대해 "처지에 어울리지도 않는 헛소리", "조수 노릇도 못하면서 허황된 운전자론으로 쓸데없는 훈시질을 한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선전매체를 통한 비난이 아니라, 세 차례나 남북 정상회담을 한 북한 최고지도자의 거친 말은 우리 대통령을 넘어 국민에 대한 무례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 대통령은 대북 저자세 논란과 대미 외교 갈등까지 감수하면서 북한을 배려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빅 딜'을 원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단독 회담을 사실상 2분밖에 못하고 합의문도 내지 못하는 '노 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중재자 그만두고 제정신으로 북한 편에 서라'는 야유까지 듣게 됐습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오늘 여기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 연설을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대통령의 고민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자괴감이 드는 것 역시 어쩔 수가 없습니다.

4월 15일 앵커의 시선은 '한반도 운전자의 오지랖'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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