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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김학의 수사단, '2013년 검찰'을 겨냥할 수 있을까

등록 2019.04.25 14:18

수정 2019.04.25 14:37

[6년 만에 다시 쓰는 윤중천-김학의 성로비 취재 수첩(4)]

김학의 수사단이 발족한지 한달이 다돼갑니다. 그동안 수사단은 건설업자 윤중천과 김학의 전 차관, 그리고 수사를 진행했던 경찰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그리고 윤중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했습니다.


■윤중천-김학의 사건의 핵심은 무엇인가?
지금은 소강상태입니다. 그런데 참 뭔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학의 수사의 핵심은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별장에서 사회 지도층들을 대상으로 각종 향응과 성접대를 제공했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윤씨는 여성들을 사회 지도층과 성폭행하거나, 이들에게 지도층의 성접대를 강요했다는 것이죠. 김학의 전 차관이 그 사회지도층 중에 일부였고, 윤씨가 나중을 대비해 찍어놓은 성접대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추악한 민낯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고 윤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20억원을 뜯긴 여성사업가 A씨가 윤씨를 고소하면서 사건이 불거졌고, 경찰이 이를 포착하면서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청와대는 이런 경찰의 첩보를 보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김 전 차관을 임명 강행했지만 경찰이 동영상을 입수하자 김 전 차관은 사퇴했습니다.

검찰은 윤씨의 배임과 마약 등 주요 혐의에 대한 무혐의 처분했고, 별장 동영상에 나오는 남성을 ‘불상의 남자’로 특정하고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 수사도 면죄부를 줬다는 것입니다.

 

[취재후 Talk] 김학의 수사단, '2013년 검찰'을 겨냥할 수 있을까
김학의 전 차관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건설업자 윤중천씨 / 조선일보DB


간단한 줄 알았더니 참 길군요. 그렇다면 이번 김학의 수사단이 겨냥해야 할 핵심은 무엇일까요?

1.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의 성범죄 규명
2.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과의 ‘검은 커넥션’
3.청와대가 김 전 차관 임명 강행과 이유와 그 배후
4.청와대의 경찰 수사 외압 및 검찰의 무더기 무혐의 배경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이나 법무부 과거사 위원회의 역할은 검찰이 과거 잘못 수사한 것에 대한 반성과 자기 고백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김학의 수사단의 수사 핵심은 2013년 검찰의 과오를 밝히는 것일 겁니다.


■김학의 수사단, 2013년 검찰은 빼고 경찰청만 강제 압수수색...의미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수사단이 당시 수사라인이나 검찰을 압수수색했다는 얘기가 들려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검찰 관계자를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 당시 수사 외압에도 무릅쓰고 수사를 진행했던 경찰청을 여러차례 압수수색했습니다. 애초에 정부 기관의 압수수색은 그 기관이 수사대상이 아니라면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지만, 임의제출 받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필요한 자료를 좀 달라고 해서 받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경찰청이나 정보국, 수사국, 그리고 사이버 센터의 압수수색 방식은 이런 방식이 아니라 강제수사방식이었습니다. 그것도 한차례의 압수수색이 아니라 여러차례였습니다. 경찰에서 ‘자기들 잘못 반성하라고 한 수사인데 우리를 압수수색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할만합니다. 결국 검찰이 자신들의 잘못을 들춰내기 보다는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잘못을 드러내려는 의도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법무부와 대검은 왜 압수수색 안하나?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왜 김학의 수사단이 법무부와 대검을 압수수색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자기 집을 자기가 털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는 얘기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논란 중 하나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김학의 전 차관의 추문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입니다. 특히 검찰총장 인선때 인선위원회에서도 김 전 차관의 추문이 거론됐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법무부가 이를 알았는지를 따져본다는 차원에서 압수수색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김학의 사퇴 누가 시켰나?...직권 남용 가능성
또 한 가지는 김 전 차관이 어떻게 옷을 벗을 수 있었느냐는 겁니다.고위 공직자들은 퇴직할 때 감사원과 검찰과 경찰에 걸려 있는 사건이 없는지를 체크합니다. 만약에 내사중이거나 수사 중인 사건, 또는 감사중인 사건이 있으면 퇴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김 전 차관이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된 것이 3월 15일입니다. 그리고 경찰이 동영상을 확보해 내사에 착수한 것이 3월 19일입니다. 그런데 김 전 차관은 이틀 후인 21일 그냥 옷 벗고 나갑니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이건 누가 책임져야 하나요?

 

[취재후 Talk] 김학의 수사단, '2013년 검찰'을 겨냥할 수 있을까
2013년 3월 21일 사표후 귀가하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 조선일보DB



■검찰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거사 진상조사단'
김학의 수사단이 2013년 검찰을 수사할 수 있겠냐는 우려는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태생적 한계에서부터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실무를 담당하는 것은 바로 검사입니다. 당시 변호사 출신 위원들이 방대한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해 검사들이 많은 일을 했다고 합니다. 검사들이 과거 제식구인 ‘검찰’이 잘못한 것을 잡아내기는 쉽지 않죠.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경찰이 검찰에 자료를 넘길 때 수만 건의 자료를 누락했다는 결론을 내놨고, 경찰은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부실수사 책임을 떠넘긴다"며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당시 수사팀장은 "당시 이 사건을 방해한 것은 검찰"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제가 한 달 전에 뒤늦게 김학의 취재에 합류하고서 가장 먼저 한 것은 2013년 이후 6년동안 가끔씩 안부를 물었던 피해 여성 중의 한명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과거사 진상조사단 조사를 받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아직 안 불렀어요. 곧 부르겠죠. 설마 안 부르겠어요."(그러나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이 여성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발족한지 1년이 넘은 시기였습니다. 사건에 대한 자료를 검토했으면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하는 것이 수순이죠. 더군다나 여성들이 거대 권력인 검찰 고위층과 맞선 사건이고, 이를 검찰이 뭉갰다는 것이 의혹이 핵심이라면 피해 여성들이 검찰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사건이 어떻게 뭉개졌는지를 따지는 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상조사단에 물었더니 잠시 멈칫하더니 참 어이없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뭐 기록이 충분해서 굳이 부를 필요가…….”

그렇습니다.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검찰 기록이 충실하기 때문에 피해 여성들을 부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검찰이 잘못한 사건을 다시 제대로 규명하자는 것이 진상조사단의 본연의 임무일 텐데, 검찰의 기록은 비판할 수 없는 ‘성역’으로 여기는 듯 했습니다. 검찰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가공했을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취재후 Talk] 김학의 수사단, '2013년 검찰'을 겨냥할 수 있을까
김학의 수사단을 이끌고 있는 여환섭 수사단장 /조선일보DB



■수사 외압의 핵심은 '경찰 수뇌부 경질'이 아니다
김학의 수사단이 수사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수사 외압입니다. 박근혜 청와대가 윤중천(박 정부와 전혀 연관 없는 윤중천을 언급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과 김학의 전 차관 수사를 못하게 막았다는 의혹입니다. 그 근거로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경찰 수뇌부를 경질된 것을 듭니다.

그런데 수뇌부가 갑작스럽게 경질된 것은 맞지만 실무에서는 수사가 진행됐고, 이를 티나게 막진 않았습니다. 수사를 힘든 게 한 것은 검찰의 영장 기각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바보가 아니라면 경찰 수사를 티나게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곽상도 민정수석이나 이중희 민정비서관 모두 검찰 출신인 만큼, 검찰을 움직여서 경찰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검찰로 사건이 넘어왔을 때 사건을 뭉개버리면 그만큼 효율적인게 없습니다. 하나의 추정이지만 그렇습니다.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난 경찰 수뇌부 경질만을 보면 수사 외압의 핵심을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수사 외압의 핵심은 ‘바로 검찰 단계에서의 무더기 무혐의’가 돼야 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당시 수사라인의 수사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성이 없는 조직은 미래가 없습니다. 검찰이 2013년 윤중천-김학의 사건에서 내놓은 결론이 최선이었는지, 그리고 정권의 외압으로 수사 결과가 왜곡됐는지, 피해 여성들이 범죄에서 겪은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되돌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정공법이 아닌 우회로를 찾는다면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김학의 수사를 검찰이 이른바 ‘셀프 수사’ 하도록 한 것도 결국은 자신들의 잘못은 자신들의 손으로 청산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지 못한다면 결국 또다시 남의 손에 맡겨지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일이 없기를.... / 안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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