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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김학의·윤중천 수사' 검찰이 여성을 대하는 법…'2차 피해' 무방비?

등록 2019.04.26 10:50

수정 2019.04.26 15:38

[취재후 Talk] '김학의·윤중천 수사' 검찰이 여성을 대하는 법…'2차 피해' 무방비?

 

[6년 만에 다시 쓰는 윤중천-김학의 성로비 취재 수첩(5)]

2004년 기자 초년병 시절에 멋 모르고 쓴 기사가 있습니다. "제발 여경 좀 불러주세요"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성범죄를 당한 여성들이 남성 경찰관 앞에서 자신이 당한 일을 설명하면서 겪게 되는 심리적 충격과 피해, 즉 2차 피해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극도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나, 여성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성범죄 피해가 주변에 알려질 경우에 겪게 되는 문제들을 수사 기관에서 소홀히 다루면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정착된 여경의 여성범죄 조사...검찰은?
이 보도 이후 경찰청은 '여경조사 청구권'을 의무화했습니다. 그리고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당시 또다시 2차 피해 문제가 불거지면서 성범죄에 노출된 여성들은 이제는 경찰에서는 여성 조사관이 전담해서 진술을 받게 됐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멋모르고 쓴 기사지만 대형 특종보다도 17년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보람 있는 취재였습니다.

여경 조사 청구권 관련 기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06&aid=0000008517


경찰에서는 정착된 이 제도가 검찰에서도 잘 적용될까요?
꽤 오래전에 서울중앙지검에는 여성 아동 범죄 조사부가 신설됐고, 검찰에서도 정착되는 분위기입니다.

남성 검사가 성범죄 상황 설명 요구...2차 피해 '심각'
그런데 2013년 윤중천-김학의 성범죄 수사 때를 다시 취재하면서 저는 제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검찰이 여성들을 최소한의 피해자로 본 것인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습니다.
별장 동영상속 여성이 본인이라고 했던 여성 B씨는 두 차례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두 여성 검사가 아니라 남성 검사였습니다. 여성에게는 진술 자체가 큰 트라우마일 수밖에 없는데, 남성 검사가 민감함 성범죄 내용들을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특히나 윤중천에게 최초 성폭행 당했을 당시의 상황을 해당 여성은 경찰에서 진술한대로라고 했지만, 검찰은 경찰에서 진술한 것은 잊고 다시 진술하라고 요구했습니다. B씨는 검사가 별장 성접대 당시 자세를 취해보라고 했다고도 했습니다. 사실이라면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인권 침해입니다. 

 

이 여성의 진술서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할 정도로 행태가 추악합니다. 최근 B씨는 윤중천이 동물과 수간도 시켰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걸 남성 검사 앞에서 진술하는 여성의 심정은 어떨지요?

서울중앙지검에 여성 범죄를 전담하는 곳이 있었는데 왜 여기서 조사하지 않았는지, 왜 여성 수사관이나 검사가 여성들의 진술을 받지 않았는지는 의문입니다. 설마 일부러 창피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겠지요?

"여성 검사, 성폭행 진술 받으면서 '보통은 넘잖아요'"
또 다른 여성인 사업가 A씨의 얘기도 해 볼까 합니다. 이 여성은 윤중천 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20억원을 뜯겠다며 윤씨를 고소했던 여성입니다.

이 여성은 다행히 성폭행 사건에서는 여성 검사가 진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여성은 윤 씨가 피로회복제라고 건네 준 음료와 알약을 먹고 나서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윤 씨의 차에서는 성적 흥분제인 로라제팜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윤씨는 이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경찰과 검찰도 이 동영상을 확보했지만, 동영상속에는 여성이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니라 윤 씨와 대화를 하고 있는 마치 제정신인 것처럼 나왔고, 여성 검사는 이 동영상을 A씨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보통은 넘잖아요"

그렇습니다. A씨가 보통 여염집 여성이 아니라 앞에 운전기사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데 뒤에서 제정신에 성관계를 할 정도로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고, A씨는 그 얘기를 들고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성폭행 당시 마약 투악 정황...흐지부지된 수사
그런데 말입니다. 마약과 마약류의 특징은 기억 상실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여성이 제정신인것처럼 보여도 마약이 투약 됐을 경우에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이런 류의 사건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마약을 투악해 놓고 멀쩡한 듯 보이는 여성을 몰래 찍어놓고 나중에 발뺌하면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경찰과 검찰이 몰랐을 리 없습니다. 이 여성은 윤중천을 고소하면서 자신이 마약 검사를 요청했고, 머리카락(보다 정확하게는 체모 검사를 했어야 하는데 이것도 안됐습니다)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본인이 직접 마약을 찾아서 먹지 않았다면 누군가 먹였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그 누군가를 찾았어야 했는데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습니다.

 

[취재후 Talk] '김학의·윤중천 수사' 검찰이 여성을 대하는 법…'2차 피해' 무방비?
 

그리고 동영상에 멀쩡한 것처럼 나오니 '보통은 넘는 여자 아니냐'고 했다는 것입니다. A씨는 여성 검사의 이름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 검사가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성 검사 '좋아서 돈 준 것 아니냐' 물어...낯 뜨거운 사진까지 제시"
또 다른 하나는 여성이 윤중천 씨에게 20억원을 뜯긴 사기 사건입니다. 당시 검사는 남성이었습니다. 검사는 A씨에게 "좋아서 준 것 아니냐"고 했고, 여성은 그 질문에 처음으로 발끈하면서 "제가 현명하진 못해도 바보는 아닙니다. 돈 20억 원을 좋아서 주는 사람이 어딨냐"고 대들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검사는 갑자기 윤 씨와 이 여성이 찍은 낯 뜨거운 사진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여성 A씨 입장에서는 사기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런 사진을 불쑥 내비는 이유가 납득도 되지 않고, 그야말로 말문이 막혔다고 합니다. 검사가 윤 씨와 이 여성의 관계를 '내연 관계'로 규정짓고, 결국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진을 제시했을 수 있지만, 해당 여성에게는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결국 검찰은 '여성이 좋아서 20억 원이 넘는 돈을 줬다'고 결론을 내리고 윤중천의 사기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검찰은 "좋아서 준 돈" 무혐의...윤중천은 "돈 갚겠다" 합의
그런데 재밌는 것은 윤중천 씨는 검찰의 무혐의 처분 이전에 여성과 20억 원 중에서 13억원을 주기로 합의했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좋아서 줬다고 한다면 윤중천이 돈을 갚겠다고 합의할 이유가 없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검찰의 이런 결론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또 한 가지는 설혹 내연 관계(A씨는 자신은 윤중천에게 끌려 다닌 피해자이지 내연 관계가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였다고 하더라도 채권 채무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냐는 겁니다. 검찰은 건설업자 윤중천 씨 사기 사건을 처리하면서 2011년도에 교제했던 여성이 빌려준 3천만 원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을 했고, 법원도 사기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피고인(윤중천)은 2011년 6월 초순경 소개받은 이00와 교제하면서 자신이 큰 공사를 하는 재력 있는 사업가인 것처럼 행세하던 중에 2011. 6. 중순경 피해자에게 "조만간 큰 공사를 따서 건물을 지으려고 하는데 지금은 사업이 조금 힘들다. 그런데 지금 추진하고 있는 공사건이 잘 될 것 같고, 그러면 몇 십억 원의 수익이 생기니 2,000만원을 빌려주면 늦어도 수개월 내에 빌린 돈의 몇 배를 갚아주겠다"는 취지로 거짓말해서 피해자로부터 2,000만원을 받았고,또 계속해서 "일이 잘 되어 가고 있으니, 나를 믿고 1,000만원만 더 빌려 달라. 몇 달 후면 먼저 빌려간 2,000만원과 함께 그 동안 빌렸던 원금은 물론이고, 거기에다 충분히 돈을 더 얹어 몇 배로 갚겠다"는 취지로 거짓말하여 1000만원을 추가로 받았다.

이렇게 서로 교제하는 사이에서도 검찰은 채권 채무 관계를 인정했는데, 유독 이 여성에 대해서만 좋아서 줬다며 그걸 입증하기 위해 남성 검사가 여성에게 '낯 뜨거운 사진'을 제시한 셈입니다.  

해당 검사 "낯 뜨거운 사진 보여준 적 없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를 했던 검사는 "그런 사진을 보여준 적이 없다. 여성이 다른 사건과 헷갈리고 있다. 모든 과정이 녹화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해당 여성은 그 때 그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검찰은 이런 인권 침해적인 문제가 제기되면 영상녹화실에서 녹화됐다는 것을 ‘만능의 보검’인 양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권 침해적 상황들을 검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영상 녹화가 될 때 하지는 않겠죠. 정식 녹화 이전이나 빈틈이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취재후 Talk] '김학의·윤중천 수사' 검찰이 여성을 대하는 법…'2차 피해' 무방비?
 

 6년만에 재개된 수사...여성들 또 희생양되나?
제가 이 글을 뒤늦게 쓰는 이유는 2019년 김학의 수사단이 수사의 성과에 매달려 자칫 다시 여성들에게 2차 피해를 가하지는 않나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2019년의 검찰을 믿어보려 합니다. 만약 여성들이 수사의 성과를 떠나서 다시 조사과정에서 수모를 당한다면 여성들은 6년 만에 다시 수사하는 이 상황이 오히려 안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할 겁니다.

피해 여성들이 2013년 이후 아픔을 잊고 잘 살기만을 바랐지만, 정작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모두들 이름을 바꾸고 마치 자신들이 범죄의 가해자인양 어디에 알려질까 두려워 숨직이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이들을 '꽃뱀'이나 '사건을 키운 장본인'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 뜯기고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그런 멍청한 꽃뱀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 여성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다른 여성들이 희생양이 됐겠죠.

검찰 입맛대로 해석한 '엮는다'는 표현
2013년 검찰은 '엮는다'는 표현을 써가며 여성사업가였던 A씨가 사건을 만들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A씨는 2013년부터 줄곧 지금까지 '자신이 마지막이길 바라는 심정 하나로 피해자를 찾아 다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건설업자 윤중천이 죗값을 받아야 한다며 피해자들을 찾아서 같이 행동하자고 했다는 것이 '엮는 것'이라면 검찰의 말이 맞겠죠.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만드는게 엮는 것일 겁니다.

말이 길어지지만 한가지 더 얘기하겠습니다. 검찰은 마치 자신들이 디지털 포렌직을 통해서 여성 A씨가 또 다른 여성 C씨를 끌어들여 김학의 전 차관에서 성폭행을 당하지도 않았는데 당한 것처럼 꾸몄다는 식의 증거를 찾아낸 듯이 말을 합니다.과거사 진상조사단도 이런 검찰의 증거를 토대로 여성 A씨가 무고정황이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검찰이 열심히 찾아냈다는 A씨와 C씨의 녹취는 A씨가 이미 일부는 녹취록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고, 나머지도 전화녹취로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를 6년 동안 고이 간직하고 있을 바보는 없겠죠. 그리고 저도 일부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들여다보면 2013년 검찰이 판단하는 것과는 다른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동영상속 여성이 자신이라고 했던 여성은 지금 나서는 것이 본인에게는 하나 이득이 될 것이 없습니다. 행여나 자신의 신분이 노출됐을 때 올 수 있는 피해가 너무나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동안 줄기차게 처벌을 원하는 것은 자신에게 피해를 줬던 그들을 그대로 둬선 안 되고, 더 이상의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성들이 여전히 윤중천씨의 처벌을 원하는 심정을 2019년 김학의 수사단이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안형영 기자 / truestor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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