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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北 탄도미사일을 미사일이라고 못 부르는 이유

등록 2019.05.08 10:18

수정 2019.05.08 10:26

지난 4일 북한이 원산 호도 반도에서 쏘아 올린 발사체를 두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처음에는 '미사일'이라고 했다가 40여 분만에 '발사체'로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국정원은 그날 국회에 보고하는 자리에서 '미사일'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합참의 발표는 이렇게 변했습니다.

[5월 4일 09:24분]
북한은 오늘 09:06분경 호도반도 일대에서 불상 단거리 미사일을 동쪽 방향으로 발사하였음.

[5월 4일 10:05분]
북한은 오늘 09:06분경부터 09:27분경까지 원산 북방 호도반도 일대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불상 단거리 발사체 수발을 발사했음. 이번에 발사된 발사체는 동해상까지 약 70km에서 200km까지 비행했음.

이 발표 이후에 국정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국회에 "발사체의 고도가 낮고 사거리가 짧아 (탄도) 미사일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합참이 갑작스런 정정과 국정원의 발언, 이를 두고 말이 안 나올수가 없었습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쐈는데, 이렇게 되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하는 유엔 결의 위반이 되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애써 안 쓰려는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일었습니다. 결국 또 문재인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북한에 대한 저자세 논란입니다.

발사 다음날인 5월 5일 북한이 발사 당시의 사진을 버젓이 공개하면서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300미리 방사포와 240미리 방사포, 그리고 외관상으로 일명 독사로 불리는 KN-02 개량형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240미리와 300미리 방사포는 북한의 자주포와 함께 장사정포로 불리는 포병 전력입니다. 그런데 KN-02와 그 개량형은 전술 지대지 미사일이라고 불립니다. 우리가 흔히 북한의 탄도미사일라고 말하는 스커드나 노동, 무수단, 화성-15형과는 조금은 다른 분류를 합니다.

 

[취재후 Talk] 北 탄도미사일을 미사일이라고 못 부르는 이유
지난 4일 북한이 발사한 발사체. KN-02 개량형으로 추정 / 연합뉴스


■ 탄도미사일의 정의

그렇다고 하여 탄도미사일이 아니냐? 그건 아닙니다. 왜냐고요? 탄도미사일을 탄도미사일이라고 하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미사일은 자체 추진체가 있고 유도 기능이 있을 때 미사일이라고 합니다. 제트엔진을 장착하고 낮게 날아가면서 지형을 이리 저리 피하는 미사일은 순항 미사일, 그리고 로켓 엔진으로 정점 고도까지 날아올랐다가 자유 낙하하면서 포물선 궤도를 그리는 것을 탄도미사일이라고 부릅니다. 요즘에는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GPS유도나 이미지 유도 등의 각종 다양한 유도장치를 장착해서 자유낙하 하다가 종말단계에서는 방향을 이리 저리 트는 편심 유도라는 기술을 부리기도 하죠.

■ KN-02 개량형과 이스칸데르, 그리고 에이태킴스

KN-02 개량형은 원형이 구소련의 이스칸데르 지대지 미사일입니다. 구소련은 이 미사일을 수출하기 위해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MCTR)가 제약하는 사거리 300km에 조금 못 미치는 수출형을 만들었고, 북한은 이를 역설계해 KN-02 개량형을 만든 것입니다.

이스칸데르와 KN-02의 특징은 기존의 탄도미사일보다는 낮은 고도로 날아서, 목표물 가까이 가서는 각종 유도 장치에 따라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도입된 사드로도 요격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원형인 이스칸데르는 미사일 분류법으로 하면 탄도미사일(ballistic missile)입니다. 미국은 이스칸데르에 대응하는 에이태킴스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도 탄도미사일입니다.

우리가 개발 중인 전술 지대지 미사일(KTSSM)도 있습니다. 일명 번개사업으로 불렸던 사업에서 잉태한 이 미사일은 북한의 장사정포를 타격하는 것이 주요 임무입니다. 산 후면에 있는 장사정포 진지까지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입니다. 이 미사일도 탄도미사일입니다.

 

[취재후 Talk] 北 탄도미사일을 미사일이라고 못 부르는 이유
발사장면 참관하는 김정은 / 연합뉴스


■ 국정원이 나서면서 꼬여 버린 '미사일' 논란


국정원은 애초에는 고도가 낮고 사거리가 짧아 (탄도) 미사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도와 사거리로 탄도미사일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아닙니다.

국정원은 또 다시 발사체가 지대지 형태이고 도발로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지대지니 공대지이니 이런 것들은 발사된 지점과 타깃의 지점을 얘기할 뿐 탄도 미사일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구분법이 아닙니다. 육상에서 쏘아서 육상의 목표물을 타격하는 것이 지대지이고, 공중에서 쏘아서 육상의 목표물을 타격하는 것이 공대지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대지라고 해서 탄도미사일이 아니라는 논리는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국정원은 나중에서야 기술적인 부분은 군에 물으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진작에 국회에 나가서 그 부분에 대한 평가는 군에서 들으라고 해야 했겠죠. 국정원이 나서면서 정부의 대응이 꼬일 대로 꼬여 버렸습니다.

 

 / 구소련의 이스칸데르 미사일 발사 장면

 


■ 北 포병국장이 참관해서 탄도미사일이 아니다?

국회에서는 탄도미사일을 관장하는 북한 전략로켓군사령관이 발사 현장에 참관하지 않았고, 포병 국장이 참여했기 때문에 탄도미사일이 아니라는 논리도 나오는 모양입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전략로켓군사령관은 스커드와 노동, 무수단, 화성-15형 등 흔히 탄도미사일라고 불리는 것들을 관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KN-02 개량형이 탄도미사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참 어색한 논리입니다.

우리군도 흔히 무극부대로 불리는 미사일사령부가 있습니다. 이 미사일 사령부는 탄도미사일인 현무-2와 순항 미사일인 현무-3를 주로 관장합니다. 북한 장사정포를 타격하는 전술 지대지 미사일은 지상작전군사령부가 주로 관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술지대지 미사일과 다련장인 천무(북한 방사포에 해당), 그리고 에이태킴스 등은 서울과 수도권을 사정권으로 하는 북한의 장사정포를 막는 대화력전의 주력 무기들입니다. 이걸 우리의 무극 부대가 맡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개발 중인 전술 지대지가 탄도미사일이 아니라고는 할 수 있을까요?

■ 미사일이 아니라고 했을 때 오는 '자가 당착'

합참이 최초 발표한 미사일을 부정하게 되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군을 오합지졸로 만드는 것입니다. 북한이 쏜 발사체가 방사포인지, 미사일인지도 모르는 꼴이 됩니다. 4일이 실전이었다면 우리는 그럼 무엇으로 대응했어야 할까요?

흔히 북한의 미사일 동향이 있으면 미국은 정찰 위성을 통해 그 동향을 면밀히 감시합니다. 이번에도 원산 일대 집결된 방사포며 KN-02 개량형을 이미 다 보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북한이 발사를 하자마자 레이더로 포착하고, 위성으로도 확인한 후 미사일이라고 결론 내리고 합참이 1보를 날렸겠죠.

■ 정부가 탄도미사일이라고 말 못하는 이유는?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미사일인지 아닌지 말을 아끼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아마 미국의 입장에서 답을 찾아야 할 듯합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발사체(Projectile)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북한이 쏜 것을 탄도미사일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한 유엔 결의 위반 얘기가 나올 것이고, 결국은 북한과의 대화는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막고 한미 모두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로 애써 ‘발사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군사적 평가로는 탄도미사일이지만, 북한과의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 국가 안보전략상으로는 탄도미사일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여기서 멈출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북한은 분명히 인공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또는 최소 괌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미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미국은 전략 자산 전개 등으로 대응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 이후에야 극적으로 북미 대화가 재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2차 핵위기때도 북한은 그렇게 벼량끝 전술을 펼쳤습니다. 이런 추측이 맞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안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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