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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국회 앞 현수막 단속 공무원은 극한직업?

등록 2019.05.09 09:16

[취재후 Talk] 국회 앞 현수막 단속 공무원은 극한직업?

 

[ 결국 울컥해버린 담당 공무원 ]

'근로자의 날'이었던 5월 1일. 영등포구청 가로경관과를 찾았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항상 내걸려 있어 불법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 국회 앞 정당 현수막 관련 취재 때문이었습니다.

갑작스런 기자의 방문에 담당 공무원은 처음부터 짜증섞인 말투로 '그래서 뭐가 알고 싶은 거냐'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몇 차례 질문과 답변이 오가고 이야기가 길어지자 차츰 안정을 찾더니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급기야 이 공무원은 중간중간 울먹이기까지 했습니다. 무엇이 이 공무원을 울컥하게 만들었을까요?


[ 국회 주변 정당 현수막이 문제되는 이유 ]

국회 주변은 여론이 분출되는 일종의 광장 같은 곳입니다. 억울한 사연이 있는 분들이 1인 시위를 하기도 하고, 시민단체들의 집회도 자주 열립니다. 이 때문에 각종 주장이나 구호가 적힌 현수막도 늘상 붙어있습니다.

이 가운데엔 정당들이 내건 현수막도 포함돼 있습니다. 특히 정당 현수막은 언제나 국회로 들어가고 나올 때 바로 맞닥뜨리는 횡단보도 앞, 다시 말해 가장 목 좋은 곳에 걸려있습니다. 그런데 시민 단체들의 현수막과 정당의 현수막엔 차이가 있습니다. 한 쪽은 합법, 한 쪽은 불법 현수막입니다.

"광고물등을 표시하거나 설치하려는 자는 (중략)특별자치도지사ㆍ시장ㆍ군수 또는 자치구의 구청장에게 허가를 받거나 신고하여야 한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제 3조입니다. 지자체에 신고하지 않고 내건 현수막 등 광고물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라는 말입니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영등포구청은 국회 주변에 불법 현수막이 난무하자 2012년 12월 금산빌딩과 현대캐피탈 건물 앞 두 곳에 현수막 지정게시대를 설치했습니다. 이곳에 걸리지 않은 현수막은 일단 불법입니다. 불법 현수막은 최대 5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외 없는 법은 없죠. 옥외광고물관리법도 제 8조 4항과 5항에 예외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단체나 개인이 적법한 노동운동·정치활동을 위한 행사 또는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하여 표시ㆍ설치하는 경우"

노조나 정당이 행사나 집회를 할 때 걸어두는 현수막은 괜찮다는 겁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행사나 집회를 할 때'라는 부분입니다. 즉, 행사나 집회 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내건 현수막은 불법 현수막이 되는 거죠.

최근 현수막을 내건 정당 가운데 국회 앞에 집회나 행사를 신고를 한 정당이 있는지 경찰서에 확인해봤습니다. 대답은 '전혀 없다'였습니다. 일각에선 '정당의 통상적인 정당활동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정당법 37조 2항이 면책 조항이 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2013년 안전행정부(지금의 행정안전부)와 법제처는 '정당 현수막도 다른 광고 현수막과 똑같이 옥외물관리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정당 활동은 보장하되 이 역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한다는 취지로 아주 상식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불법 정당 현수막 과태료 '0'원 ]

영등포구청의 담당 공무원은 수시로 정당 현수막을 단속하고 철거도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과태료를 부과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건 다른 어느 구청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귀띔도 해줬습니다. 이유는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난처해요. 아시다시피 구청장님도 민선이고 구의원들도 여러 정당 소속 구의원들 계시고 하니까 과태료 부과를 하기가 힘들어요."

말단 공무원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취지로 들렸습니다. 이 공무원이 울먹였던 것도 이 대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는데 취재기자가 찾아와 왜 단속이 안되냐고 물어보니 억울했을 만도 합니다. 조금 미안해지더군요. 단속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건 당연했습니다.

"정당 현수막은 정말 끝이 없어요. 하루하루가 새로워요."

철거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현수막을 건다는 겁니다. 실제로 저희가 관련 취재를 시작한지 3시간 만에 구청은 정당의 불법 현수막을 모두 철거했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침, 전날 현수막이 걸려있던 바로 그 자리에 모 의원실의 다른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또 다른 종류의 정당 현수막들이 여러 개 걸려있습니다.


[ 불법 현수막 처벌 강화법 발의한 국회 ]

물론, 국회 앞에 정당이 현수막을 내건다고 해서 당장 큰 해악이 생기는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법을 만드는 국회 앞에서 다른 곳도 아닌 정당이 법을 무시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봐야할까요?

현재 국회엔 불법 현수막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입니다. 불법 광고물 적발시 현행 최고 500만원인 과태료를 '천만원'까지 두 배 올리자는 내용입니다. 수년째 불법 현수막을 공공연하게 내걸고 있는 정당에 묻고 싶습니다. 정말 이 법 지킬 자신 있습니까? / 서주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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