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새끼오리들의 세상 나들이

등록 2019.05.17 21:45

수정 2019.05.17 22:11

어느 시인이 자유로를 오가며, 차에 치여 죽은 짐승들을 봅니다. 며칠씩 깔리고 깔리다 가루가 돼 날리는 것을, 그는 풍장(風葬) 이라고 했습니다.

"차 바퀴가 몸 위를 지날 때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공기가 되어가고 있다… 자동차가 질주할 때마다 태어나는 바람이,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다음 세상에 태어나거든 교통사고 없는 초원에서 행복하게 잘살기 바란다…"

이 삵은, 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여 쓰러진 것을 살려내 돌려보냈던 삵입니다. 두 달 만에 다시 치여 기어이 주검으로 만난 것이지요.

도로는 뭇 생명의 무덤입니다. 애꿎은 생명들을, 질주하는 현대 물질문명이 깔아뭉갭니다. 

그렇기에 며칠 전 광주광역시의 왕복 10차로를 건너는 오리 가족 나들이는 신선한 감동이었습니다. 경찰이 차량 통행을 막은 대로를, 어미오리 따라 새끼오리 열세 마리가 종종걸음 쳐 가로지르는 장면이었지요.

그런데 그 뒤에 더 따뜻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흰뺨검둥오리 어미가 이 동네 아파트 옥상에 처음 날아든 것이 3년 전이었습니다. 사람 눈을 벗어나기 힘든 도시에서 20층 아파트 옥상만큼 알을 낳고 품기에 좋은 곳도 드물었겠지요. 겨울 나고 새끼들이 웬만큼 자라자 어미는 본능에 따라 옥상에서 함께 뛰어내렸다가 새끼를 모두 잃었습니다. 어미는 이듬해 겨울 다시 돌아왔고 비극은 반복됐습니다.

지난 겨울 어미 오리가 세 번째로 오자 아파트 주민들이 나섰습니다. 새끼들이 세상으로 나가는 봄을 앞두고 옥상에서 지상까지 비닐로 만든 탈출통로를 연결했습니다. 오리 가족은 무사히 옥상에서 내려왔고 주민 요청을 받은 경찰이 큰 길을 막아준 겁니다.

오리 가족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백미터 떨어진 강변 새 보금자리까지 무사히 갔습니다. 아침 일찍 아파트를 나선지 열 시간 만이었습니다. 여린 새끼오리들에게 인간 세상은 더이상 매몰찬 콘크리트 정글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에게도 그 동네는 아직 살만한 세상이었습니다.

5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새끼오리들의 세상 나들이'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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