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정치인의 인격과 언격(言格)

등록 2019.05.23 21:45

수정 2019.05.23 21:57

신록 푸르르고, 바람 싱그럽고, 마음 가벼운 오월입니다. 맑고 고운 언어로 서정시 같은 산문을 남긴 피천득 선생의 수필 '오월'이 문득 생각납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 가락지다…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어느 시인이 "기분 좋은 말을 소리 내보자"고 했습니다.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그렇듯 기분 좋은 말이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온통 거칠고 날 선 말로 시끄럽습니다. 저마다 혀 밑에 도끼 한 자루씩 품고서 휘두릅니다. 쥐처럼 닥치는 대로 갉아댑니다.

정치판에는 때아닌 '독재자' 논쟁이 벌어지고, '사이코패스'에 '괴물'이라는 말로도 모자라, 한센병 환자를 모독하는 발언까지 어지럽게 춤을 춥니다. 그래서 그런지 민망한 말싸움이 금융위원장과 기업 대표에게 옮아 붙었습니다.

당 대표에게 험한 말을 했던 하태경 의원이 하루 만에 사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통적으로 쓴 단어가 있습니다. 손 대표는 "금도를 지키라"고 했고 하 의원은 "금도를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도 틀린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금도를 '넘지 말아야 할 선'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금도(襟度)의 사전적 의미는 '옷깃(襟)의 크기(度)', 즉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도량을 뜻합니다. "옷깃을 여민다"는 말이 있듯, 옷깃은 마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금도는 남을 너그럽게 헤아려 받아들일 줄 아는 아량을 뜻하지요.

말은 마음의 소리, 정신의 숨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 특히 '지도층 인사'들의 입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건 그래서 우리 정신이 쇠퇴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정치판에 금도를 갖춘 지도자가 몇 명만 돼도 정치가 달라질 텐데, 그리고 세상이 달라질 텐데, 그 꿈같은 기대를 해 봅니다.

5월 23일 앵커의 시선은 '정치인의 인격과 언격(言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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