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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강경화 장관님, 질문 있습니다

등록 2019.05.24 11:20

수정 2019.05.24 21:56

지난해 7월 주 파키스탄 대사관 외교관 A는 자신과 함께 외교관에서 일하는 행정직원을 집으로 초대합니다. 부인이 한국에 간 사이에 말이죠. 집에 망고가 많으니 나눠주겠다는 그럴싸한 이유도 들었습니다.

퇴근 후 이 직원은 A의 집에 방문했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와인도 마셨죠. A는 취기가 오른 직원을 끌어안고 무릎에 앉히는 등 성추행을 했습니다. 직원은 다음 날 대사관 동료에게 이야기 했고, 이 사안은 외교부 본부까지 보고가 됐습니다.

결국 감사를 받고 대기발령 상태가 된 A는 외무 공무원 징계위원회의 처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이 사안과 관련한 외무 공무원 징계위원회의가 열립니다. (A는 고위공무원이 아니어서 중앙 징계위원회가 아닌 외교부 자체 징계위원회에서 징계 처분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날 회의에는 징계 위원회 위원장인 조현 당시 외교부 제 1차관과 공무원 위원 2명과 민간 위원 2명이 참여했습니다. 회의의 결론은 '정직 3개월'이었습니다.

아내가 없는 사이 직원을 초대해, 취기가 오른 직원을 성추행한 행위의 대가라기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징계 수위입니다. 취재를 위해 만난 법조인들은 이 정도 사안이라면 형법에 따른 강제추행, 준강제추행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에 해당될 수 있다고 입을 모으는데 말이죠.

사건이 달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비슷한 시기 국방부는 부하 여군의 손을 만졌다는 이유로 군 장성을 보직해임하고 형사 처벌했습니다. 외교부 성비위 사건이 터질 때 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강조했던 '성비위 불관용 원칙'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처분입니다.

물론 외교부는 징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A의 그동안의 상훈 기록, 근태 등이 정상 참작이 됐다면서 '정직 3개월'도 나중에 인사에 불이익이 가는, 상당한 중징계라는 입장이지만요.

지금 A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정직 3개월을 마치고,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4월에는 외교부 한 연구소가 개최한 세미나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A의 입장이 듣고 싶어 여러 차례 연락을 해봤지만, A와 직접 통화는 어려웠습니다. 대신 A는 이 사안을 취재하고 있다는 제 문자 메시지에 "드릴 말씀이 없다, 스스로 정신적으로 심한 자책감에 빠져 있다"는 짧은 답만 보내왔습니다.

인사, 특히 징계는 예민한 문제고, A는 여전히 외교부에서 활동하는 인물이라 취재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알게 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외교부 관련 부서에 연락해도 대부분 받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았어도 "대답할 수 없다"는 허무한 답만 돌아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겨우 연락된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부 성비위 징계 문제를 취재하고 있다는 제 말에 대뜸 이렇게 답했습니다.

"한참 지났고 이미 공론화도 됐고..."

이미 지난해 국정감사 때 보도된 내용을 더 파헤쳐서 무엇하겠냐는 의미였습니다. 성 비위 문제가 기사화 되는 게 부담스럽다며 "재판 받은 분들도 사회에 복귀하는데..."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결국 그 관계자는 제게 다시 연락을 주지 않았습니다.

"문화의, 사고의 그야말로 근본적인 변화를 가지고 오기 위해서 본부의 직원들에 대한 교육은 물론이고, 공관 직원들에 대한 교육을 좀 더 철저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도적으로 또 보완할 부분에 있어서는 계속 검토하면서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강경화 장관은 파키스탄 대사관 성비위 사건이 보도된 다음 날인 작년 10월 4일, 내신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벌써 7개월이 흘렀습니다. 과연 그때보다 외교부의 '문화와 사고'가 얼마나 더 . 변화됐을까요. 강 장관을 만나면 꼭 여쭤보고 싶습니다. / 정수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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