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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이제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등록 2019.05.24 21:47

수정 2019.05.24 21:59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의 한 장면입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건달입니다"

장-노년층 기억 속에서는 생소하지 않은 교실 풍경이었지만, 이건 분명 훈육이라기 보다 폭행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회초리'라는 말에 깃든 정서는 사뭇 다릅니다. 분노보다는 사랑과 엄한 가르침이, 그리고 때로 슬픔이 베어 있지요.

"회초리를 드시고, '종아리를 걷어라', 맞는 아이보다, 먼저 우시던 어머니…"

아흔아홉에 작고한 노시인의 짤막한 시에는 때리는 어머니와 맞는 자식이 함께 우는, 아련한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 어느 초등학생 학습서에 실린 속담 맞히기입니다. 'OO하는 자식일수록 매로 다스려라'에서 빈칸에 들어갈 말은, 잘 아시듯 '사랑'입니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서양 속담과도 통하지요. 하지만 이 문항은 체벌을 합리화한다는 시민단체 지적을 받고 삭제됐습니다.

민법에서 부모의 체벌 권한을 없애겠다는 정부 발표는, 현실에 '사랑의 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 아동학대 가해자의 넷 중 셋이 부모라고 합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아이를 때려도 된다는 명제는 가정 폭력과 학대의 씨앗이 되기 쉽습니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거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매가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돼서도 안 될 겁니다.

세계 주요 국가 중에 체벌권을 명문화한 나라 역시 우리와 일본뿐이라고 합니다. 국가가 법으로 부모의 체벌을 보호하는 시대는 끝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곤혹스럽습니다. 아이를 타이르고 훈계하는 것만으로 올바르게 키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부모 넷 중 세 명은 여전히 "체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가정을 이끄는 부모로서, 집 안 깊숙이 들여다보는 법의 눈초리에 마음 한 구석이 허허롭기도 할 겁니다. 그래도 이제는 스페인 교육운동가 페레의 말처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세상입니다. 부모들은 회초리를 버리는 대신 훨씬 더 까다로운 훈육의 짐을 지게 됐습니다.

5월 24일 앵커의 시선은 '이제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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