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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즐겨라 대한민국, 흥(興)의 축구를

등록 2019.06.14 21:46

수정 2019.06.14 22:01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적 연기자 반열에 오른 송강호씨. 그에게도 무명배우 시절이 있었습니다. 22년 전 3류 조폭을 연기하던 장면 하나 보시지요.

"니들, 한국 복싱이 잘 나가다 요즘 왜 빌빌대는 줄 아나?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이야. 옛날엔 라면만 먹고도 챔피언 먹었어!"

그랬습니다. 배고픔은 한국 스포츠의 원동력이었습니다.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사진입니다. 그런데 다들 마스크를 썼습니다. 전지훈련 갈 돈이 없어서 멕시코 고지대 적응훈련을 한다며 감기용 마스크를 쓰고 뛴 겁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 갔지만 불과 36년 전만 해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세계대회 4강 신화를 썼습니다. 외국 언론은 악착같이 뛰는 한국 청소년들을 벌떼라고 불렀습니다. 그 '벌떼 축구' 뒤에는 피도 눈물도 없이 선수들을 몰아붙인 박종환 감독이 있었습니다. 열 살에 월남해 미군부대 주변을 떠돌며 배고픔을 달랬던 그는 냉혹한 승부사로 불렸지요.

36년이 흘러 스무살 이하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정정용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경기를 마친 뒤, 라커에서 선수들끼리 흥을 표출하는데 규칙을 지켜 잘하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라커룸에서 정 감독도 막춤을 추며 어울렸다고 합니다. 그는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갈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실컷 즐기고 와라…"

누구보다 달라진 것은 선수들입니다. 즐기는 축구, 흥(興)의 축구를 할 줄 압니다. 그러기에 누구와 싸우더라도 주눅들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번번이 유럽 프로리그 정상급 선수들과 맞섰지만 긴장하지도 허둥대지도 않았습니다. 한번 졌다고 울거나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FIFA는 그런 우리 선수들을 가리켜 '강철 신경' 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한국 축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DNA, 축구 신인류를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반갑고 고마운 것도 나라를 빛내서라기보다, 우리네 삶에 큰 위로와 힘이 돼 줘서 일 겁니다. 결승전에서도 그 발랄한 젊음, 눈부신 생명력을 쐬어봐야겠습니다. 승부는 그 다음 다음입니다.

6월 14일 앵커의 시선은 '즐겨라 대한민국, 흥(興)의 축구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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