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일본에서 돌아온 장군석

등록 2019.07.03 21:44

수정 2019.07.03 21:49

서울 망우리 203363호 묘지에 이런 비석이 서 있습니다.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무덤 주인은 아사카와 다쿠미. 1931년 그가 숨지자 폭우 속에 수많은 조선사람이 나와 서로 상여를 메겠다고 했습니다. 장례행렬이 지나는 곳마다 마을사람들이 노제를 지내고 가라고 붙잡았습니다. 산림과 직원으로 조선에 온 그는 늘 한복에 망건을 쓰고 다녔습니다. 백자와 소반의 아름다움에 빠져 책도 썼습니다. 형 노리타카와 함께 애써 모은 전통 미술품 3천5백점을 조선민족박물관에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그가 곳곳에 가꾼 숲도 지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묘지에는 늘 누군가 놓고 간 꽃이 있고, 해마다 기일이면 한국인과 일본인이 모여들어 추모합니다.

그리 큰 뉴스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어제 일본에서 백년 만에 돌아온 이 장군석이 제 눈길을 붙잡았습니다. 어느 일본인이 기증한 2미터 석상이 당당합니다. 일본으로 반출되고 20년 뒤 외할아버지가 경매에서 샀다고 합니다. 그는 어머니가 "조선에서 온 귀중한 유물이니 타고 놀면 안 된다"고 했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돌려보낼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한국인과 쌓은 우정이었습니다. 부인이 큰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서울에서 친구가 날아와 정성스럽게 해준 음식에 감격한 겁니다.

한일관계가 차갑게 식을수록 이수현씨 이야기를 더 자주 듣게 됩니다. 잘 아시듯, 2001년 도쿄에서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청년 이수현 말입니다. 지난주만 해도 서울에서 그를 기리는 일본 다큐영화가 상영돼 양국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넉 달 전 그의 아버지가 작고했을 때는 일본 외무장관이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조의 메시지를 내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다쿠미 형제부터 도쿄의 의인 이수현까지 사람과 사람이 맺은 이해와 교감과 우정의 끈이 이어옵니다.

그런데 해묵은 감정의 장벽을 넘어 두 나라 국민 마음속 인간 사랑의 불씨를 지필 큰 정치는 지금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7월 3일 앵커의 시선은 '일본에서 돌아온 장군석'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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