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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21세기 의병과 죽창

등록 2019.07.15 21:48

수정 2019.07.15 22:02

16세기 중반 핀투라는 포르투갈 모험가가 일본에 표류해 소총 한 자루를 주고 갔습니다. 일본은 이 소총을 자기네 식 조총으로 개조해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이 조총과 오랜 내전에서 쌓은 전투력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조선은 훈구파와 사림파가 무한 대립하면서 일본을 '개돼지의 나라'로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는 잘 아시는 대로입니다. 

서애는 왜군 포로를 포섭해 조총 제조법을 익혔고 명나라에서 신병기를 들여오려 애썼습니다. 적개심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차장이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처럼 뭉치자"고 했습니다. 조국 민정수석은 동학 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노래 '죽창가'를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집권당에서는 의병 봉기론이 나왔고, 대통령은 '열두 척 배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을 거론했습니다.

일본의 야비한 보복에 민심이 분노할수록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차분하고 냉철해야 합니다. 우리 정치와 외교는 한일관계가 여기까지 오도록 무엇을 했느냐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제라도 현실적 타개책을 찾아야 할 절박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최고 지도층에서 약속이나 한듯 임진왜란과 동학혁명, 국채보상운동을 거론하고 나선 걸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밖을 봐야 할 시선이 안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야권의 무분별한 정부 비판 역시 위험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 말은, 할 때는 통쾌했을지 모르지만 일본을 자극해 IMF 위기 악화에 한몫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에 독도를 방문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지율을 높였을지는 모르지만 일본이 독도를 국제적 분쟁지로 부각시킬 수 있게 도와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2013년 서울에서 한일 축구 국가대항전이 열렸습니다. 붉은 악마는 이순신과 안중근 영정을 들고나왔고 일본 응원단은 욱일승천기로 맞섰습니다. 당시 축구협회가 둘 다 압수해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권이 하고 있는 일들이, 과연 나라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7월 15일 앵커의 시선은 '21세기 의병과 죽창'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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