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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아름다운 꼴찌

등록 2019.07.17 21:45

수정 2019.07.18 00:49

"종합선수권대회 첫날 시합. 결과는 19대0, 7회 콜드게임. 이로써 우리의 통산전적은 142전 142패…"

1998년 어느 대기업 이미지 광고입니다. 서울대 야구부는 순수 아마추어 팀이어서 대회만 나가면 동네북처럼 콜드게임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야구협회가 서울대와 치른 경기의 타율은 공식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였지요. 연세대 야구부는 서울대에게 가까스로 역전승한 뒤 삭발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안타를 친 서울대 선수가 쏜살같이 내달려 베이스를 밟았습니다.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선수가 달려간 곳은 3루였습니다. 공식대회에서 처음 안타를 터뜨렸다는 감격에 겨워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 서울대가 2004년 광주 송원대를 2대0으로 이겼습니다. 27년 199패 끝에 올린 첫 승리였습니다. 선수와 감독 모두가 끌어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우리 여자수구 대표팀이 올린 첫 골도 아름다웠습니다. 두 경기에서 내리 아흔한 골을 잃도록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막판에 기어이 골을 터뜨리자 관중이 모두 일어나 '대한민국'을 소리쳐 연호했습니다. 대표팀은 대부분 고교 수영선수들입니다.

남북 단일팀을 제안해놓고 북한만 쳐다보다 한 달 보름 전에야 팀을 꾸렸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경기 전날 다짐했습니다. "이길 가능성이 1퍼센트가 안 돼도 스스로 경기를 포기하는, 초라한 팀은 되지 말자"고.

소설가 박완서는 수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마지막으로 결승선에 들어오는 마라톤 선수의 일그러진 얼굴에 감동했습니다. "그렇게나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 야구부는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요. 두 번째 승리를 향해 지금도 뛰고 있습니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의미를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결코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자수구 대표팀이 내일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도 지더라도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번 대회가 끝나도 멈추지 않고 언젠가 1승을 올리는 순간을 보고 싶습니다.

7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아름다운 꼴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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