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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걱정도 병

등록 2019.07.23 21:45

수정 2019.07.23 21:59

중년 남자가 건반에 코가 닿을 듯 잔뜩 웅크린 채 열정적으로 바흐를 연주합니다. '피아노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던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녹음장면입니다.

그는 따뜻한 물에 손을 20분쯤 담그고 난 뒤 이 접이식 의자에 앉아야만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의자와 함께 온갖 약병이 가득 담긴 가방을 들고 다녔습니다. 늘 병을 걱정하고 조심했지만 쉰 살에 뇌출혈로 숨졌습니다.

10년 전 신종 플루가 유행했을 때 어느 정신과 진료실에 방독면 쓰고 흰 장갑 낀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가족을 모아놓고 신종 플루 감염 예방교육을 수십 번 했다고 했습니다. 집에 멸균 소독기를 들여놓고 밥도 살균한 식기에 먹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이긴 합니다만 건강 염려증은 이미 낯선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 기대수명이 82.7세로 일본 다음으로 길다는 OECD 통계가 나왔습니다. 질병 사망률과 비만 인구도 OECD 평균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OECD에서 가장 적은, 셋에 한 명꼴입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사람 열에 아홉이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비관적입니다.

1인당 병원 외래진료 횟수도 한 해 17건으로 십 몇 년째 1위입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인의 장수비결은 김치와 건강염려증이라고 비꼴 만도 합니다.

우리는 의학-건강 정보의 홍수 속에 삽니다. 사람들이 만나면 병과 건강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처럼 독특한 종합 건강검진 방식이 번창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덕분에 병을 일찍 발견하기도 합니다만, 마음 편하게 사는 것보다 좋은 건강비결은 없을 겁니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1938년 하버드 재학생을 3백명쯤 선정해 60년 넘게 인생행로를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고통과 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 친밀한 인간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해준다"고…

눈 어둡고 몸 굳어 발톱 깎기가 전쟁과 평화처럼 파란만장한 것이 노년이라고 합니다. 늙는 것은 생로병사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7월 23일 앵커의 시선은 '걱정도 병'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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