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등록 2019.07.24 21:45

수정 2019.07.24 22:32

여기는 덕수궁 돌담길에서 옛 러시아 공사관까지 가는 '고종의 길' 입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던 아관파천의 길이지요. 대한제국의 정체성을 회복하려고 복원했다지만 이 길은 미화 찬양하는 길이 아니라, 치욕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뼈아픈 교훈을 얻는 길이어야 합니다.

고종은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궁녀의 옷을 입고 궁녀의 가마에 몸을 숨겨 경복궁을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외국 공관에서 나랏일을 보는 1년 동안 신하들은 러시아 공사가 발급한 통행증이 있어야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갖은 이권이 러시아로 넘어갔습니다. 열강은 그런 조선의 군왕을 우습게 보고 이빨을 드러내 몰려들었습니다.

러시아 군용기가 외국 군용기로는 사상 처음 영공을 무단 침범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는 방공식별구역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헤집었습니다. 한 중 일 러 네 나라 군용기가 독도를 에워싸고 뒤엉킨 것 역시 초유의 사건입니다.

와중에 일본은 황당하고 파렴치하게도 우리 정부에 항의했습니다. 고노 외상은 "독도가 일본 영토여서 우리가 대응해야 하는데 한국이 조치에 나섰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탄도미사일 탑재능력을 늘린 신형 잠수함을 공개했습니다. 대통령 수석비서관이라는 사람이 우리 내부를 겨냥해 한 '무도하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바깥을 향해 써야 할 말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 도발은 한미일 삼각협력이 금 간 틈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이러다 우리 외교가 어느 진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국제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그런데 영공이 침범당한 어제 청와대는 국가안보회의도 안보장관회의도 소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쯤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번 사태는 급변하는 동북아 안보 지형의 현주소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한 세기 전 고종이 그랬듯, 어느 길로 가야 사는 길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7월 24일 앵커의 시선은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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