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핵에는 핵

등록 2019.07.31 21:46

수정 2019.07.31 21:57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빌어, 빌지 않을 테냐…" "니놈이 내 가시창 맛을 덜 봤구나…"

지금 보시는 건, 북한 만화영화 '호랑이를 물리친 고슴도치'입니다. 북한 김정일은 2005년 생일잔치에서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고 웅크리고 있으면 호랑이도 어쩌지 못한다"며 껄껄 웃었습니다. 호랑이는 미국, 고슴도치는 북한, 그리고 가시는 생일 닷새 전 보유 선언을 한 핵무기를 가리킵니다.

공교롭게도 고슴도치론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강조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같이 작은 나라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을 바늘로 감싸야 사자같은 맹수도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고 했지요. 박 대통령은 닉슨이 주한미군 2만명을 철수시키고 추가 철군계획을 밝히자 핵개발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핵 개발팀은 전두환 정부 때 해체됐고, 주한미군이 갖고 있던 전술핵은 노태우 정부 때 철수했습니다.

그런 한반도 핵무기 역사에서 엊그제 미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이 제안한 한-일 핵무기 공유 보고서는 상당히 획기적입니다. NATO식 핵 공유와 전술 핵 재배치는 북핵 대응수단으로 우리 정부가 주장한 적이 있지만 미국 정부기관이 공식적으로 들고 나오기는 근래 처음입니다. 실제로 한-미 국방부가 3년 전까지 양국 핵 확장 억제위원회를 통해 핵 공유를 논의했지만 번번이 미국 측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안보정세는 닉슨과 카터 대보다도 엄중합니다. 북한은 오늘도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동맹국 미국의 대통령은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아니니까 상관없다고 합니다. 그 틈새를 파고든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폭격기가 독도 상공을 헤집고 다니면서 사상 처음 영공까지 침범했습니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향해 미사일 불장난을 벌일 수 있는 것은 딱하나 믿는 구석, 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핵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은 핵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습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라는 말도 있듯, 이제 우리도 이핵제핵(以核制核)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됐습니다. '핵 없는 한반도' 평화시대가 온다면 더 없이 좋겠습니다만, 북한이 현실적으로 핵무력을 강화하는 상황에 우리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7월 31일 앵커의 시선은 '핵에는 핵'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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