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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극일(克日)의 길

등록 2019.08.06 21:43

수정 2019.08.06 21:51

순진무구한 삶을 살다 간 천상병 시인은 생전에 '가난은 내 직업' 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오늘 아침은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시인이란 애초에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유안진 시인은 스스로를 숙맥 바보 찌질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50몇년 전 문단 거목 박목월 시인을 모시고 설렁탕을 먹을 때 일입니다. 소금이 필요한데 목월 곁에 소금이 있어서 차마 달라하지 못하고 그냥 먹고 말았습니다. 목월은 "숙맥이어서 시는 제대로 쓰겠다"며 등단 추천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2천년 전 중국 사내 미생만큼 꽉 막힌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서 만나기로 했는데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빠르게 불어났습니다. 그는 오지 않는 여자를 기다리며 교각을 붙잡고 버티다 떠내려 갔습니다. 

때로는 세상살이에 이런 우직함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5천만 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대통령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북한이 오늘 또다시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렸습니다. 지난 2주 사이 벌써 네 번째입니다.

첫 발사 때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에 대한 엄중한 경고" 라고 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대놓고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했습니다. "아무리 비위가 거슬려도 경고를 무시하는 실수를 범하면 청와대 주인은 자멸할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북한을 향해 한마디라도 따끔한 말 해주기를 기다리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겁니다. 

대통령은 어제 남북경협으로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한국 경제의 앞날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대통령 메시지에 깜짝 놀랐다는 얘기를 당장 저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가령 북핵이 해결되고 경협의 길이 열린다 해도 자유시장경제를 거부하는 북한과 무엇을 어떻게 협력해 단숨에 일본을 앞지를 수 있을까요. 설사 된다 해도 몇 년 기다려서 될 일은 아닐 겁니다. 청와대는 "당장 하겠다는 게 아니고 국민 불안을 해소하려는 차원" 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만약 이 말 때문에 국민들이 더 불안해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8월 6일 앵커의 시선은 '극일(克日)의 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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