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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관제 불매운동은 사절

등록 2019.08.07 21:44

수정 2019.08.07 21:52

서울 어느 아파트촌 허름한 상가에 40년 넘은 치킨집이 있습니다. 닭발을 우려낸 진국 삼계탕도 별미지만 유명한 치킨에 밀려 주문이 뜸해진 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주인은 하루 열 그릇은 꼭 준비해 둡니다. 일본인 관광객들 때문입니다. 한두 명씩 알음 알음, 이 집 삼계탕을 소개한 일본 잡지를 오려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던 겁니다.

올해 초 관광공사가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장 상품을 조사했더니 1위가 '요술 버선' 이었습니다. 다다미에 사는 일본사람들이 싸고 따뜻하고 화려한 개량 버선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것이지요. 명동 철판구이 집에서는 일본 여성들의 박수가 터지곤 합니다. 고기 먹고 나면 하트 모양으로 볶음밥을 만들어주는데 여기에 감격한 박수소리입니다.

그렇듯 구석구석 한국의 맛과 멋을 즐기고 사랑할 줄 아는 일본사람이 많습니다. 더욱이 요즘 한일관계 와중에 한국을 찾는 일본인이라면 두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런데 어제 명동을 비롯한 서울 한복판에 중구청이 '재팬 보이콧' 반일 깃발을 내걸었습니다.

여당 출신 정치인인 구청장은 박수를 받을 거라고 계산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어이없다, 한심하다는 시민들의 질타가 쏟아졌고 결국 한나절도 못 가 깃발을 모두 철거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이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관청이 숟가락을 얹으려다 망신을 당한 셈이지요.

불매운동은 일본 정부에게 충격을 줘서 각성시키겠다는 자발적 실천운동입니다. 하지만 관이 선동하고 나서면 시민운동의 힘과 의미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시민이 잘 압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가증스러운 것도, 한국 관광을 금지하고 한국 기업의 영업을 방해한 관제 불매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시민들은 이번 사태를 주도하는 아베 정권과 일본 사람 개개인을 이미 분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의 반일 선동에는 그런 사리분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일 충북 제천에서 열리는 국제음악영화제에 일본영화 일곱 편이 참가합니다. 제천 시의회가 일본영화 상영을 취소하라고 했지만 제천시는 거부했습니다. 민간 문화교류에 정치가 끼어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일본 아이치 국제미술제에서 소녀상 전시가 중단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의젓함입니다. 서울 중구청장은 제천에 가보기를 권합니다.

8월 7일 앵커의 시선은 '관제 불매운동은 사절'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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