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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홍콩의 분노

등록 2019.08.14 21:46

수정 2019.08.14 21:51

홍콩 영화 '중경삼림'에서 주인공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통조림을 사 먹습니다. 유통기한까지 여자친구가 돌아오지 않으면 사랑도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중경삼림'은 영국 통치기한이 만료되는 홍콩 반환을 앞두고 홍콩사람들이 겪는 불안과 두려움을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로 담아내 호평을 받은 영화입니다.

그런가 하면 '첨밀밀'이란 영화도 있었지요. 홍콩에 흘러 들어온 중국 남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반환을 앞둔 홍콩은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닙니다. 홍콩사람 30만명이 이민을 떠났듯, 두 사람도 홍콩을 떠납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뉴욕에서 재회합니다.

1997년 7월 1일 홍콩에 인민해방군이 들어와 중국 영토로 접수했습니다. 장쩌민은 반환식에서 덩샤오핑이 내건 일국양제 원칙을 재천명했습니다.

"한 나라 두 체제를 결단코 유지하고 홍콩의 사회경제적 자유와 법률을 보장하겠습니다…"

그리고 22년, 일국양제 원칙으로 평화가 지켜지는 듯 하던 홍콩이 다시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고 있습니다. 최대 200만에 달하는 군중이 연일 시위를 벌이고 공항을 점거해 국제도시 홍콩의 관문을 마비시켰습니다. 고무탄을 발사하는 강경진압에 항의해 핏빛 안대를 한 시위대 모습이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홍콩인들은 일국양제가 무너지는 데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던 우산 시위를 힘으로 눌렀습니다. 공산당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중국으로 끌려가고 기자들은 괴한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이번엔 홍콩인을 잡아갈 수 있는 범죄인 인도법이 시위를 폭발시켰습니다.

과거 덩샤오핑은 영국이 홍콩에 독약을 뿌려놓을 거라고 걱정했습니다. 이권 사업을 쓸어가 홍콩 재정을 거덜 낼지도 모른다고 했지요. 하지만 영국은 '독 아닌 독'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홍콩사람 뼛속 깊숙이 새겨놓고 떠났습니다. '중화 부흥'을 내세운 시진핑에게는 그런 홍콩이 눈엣가시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 극단적 이념과 국익 지상주의, 포퓰리즘을 앞세운 지도자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계가, 안전판이 막힌 채 끓고 있는 압력솥처럼 돼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혼돈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8월 14일 앵커의 시선은 '홍콩의 분노'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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